성묘길은 안전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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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줄잡아 1천5백만명이 되리라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는 추석연휴 첫날부터 전국의 도로는 차량의 물결로 홍수를 이뤘다. 특히 경부 고속도로 하행선은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차량들로 초만원에 혼란의 도가니를 방불케 했다.
한치라도 앞서 가려고 마구 밀어붙이고 추월하는 차량, 신경질적인 경적소리를 내거나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며 조급해 하는 차량들로 뒤범벅이 된 듯한 느낌이다. 안전의식이나 양보의 미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 볼 수 없다. 하기야 60만대가 넘는 서울 차량의 반수 이상이 귀향길에 나섰으니 그럴 법도 하다. 더구나 도로마저 2차선이다.
연휴나 명절때마다 전쟁을 연상케하는 무질서와 혼잡이 되풀이되고 곳곳에서 교통사고가 다발하는 현상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지난 3, 4일 연휴때도 이미 11명의 귀중한 생명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이번 연휴에는 또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될지 벌써부터 염려스럽다. 단 몇분 먼저가려다 영원히 먼저가는 불행한일이 안 일어나리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교통사고 왕국이다. 그것도 교통사고의 9할이 운전자의 교통법규 위반에서 비롯되고 있다. 교통법규를 우습게 여기고 안전의식의 결핍과 인명의 경시풍조가 사고를 유발하고 있는 셈이다.
양보와 질서를 축으로 하는 세련된 자동차문화가 자리를 못잡았기 때문이다. 오죽해서 외국신문에서조차 우리의 운전관습을 양보와 타협을 모르는 우리 정치인들에게 비유했겠는가.
이런 운전 행태로 인해 여느 때도 하루평균 5백11건의 교통사고가 발생, 20명이 사망하고 있다. 2분마다 1건이 발생하고 3분마다 1명이 부상하며 1시간 10분마다 1명이 숨진다는 계산이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수가 각종 재해사고의 4배가 넘고 이로 인한 재산피해가 풍수해의 10배, 화재피해의 39배나 된다는 조사보고는 놀라울 뿐이다. 더구나 이런 추세라면 가정마다 40년에 한번씩 가족중의 1명이 윤화로 숨진다는 계산이고 보면 80세까지 사는 사람이라면 2명의 가족을 잃는 불행을 맞게되는 셈이다.
연휴에는 마음이 들뜨고 음주와 과로가 겹치고 과속과 앞지르기 경쟁 등 객기를 부리는 통에 사고가 더욱 빈발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든다는 말처럼 차량대오를 벗어나 요리 조리 피하고 빠지면서 곡예운전으로 차량질서를 파괴하기도 한다.
질서는 지키기가 불편하고 답답하지만 참고 견디면 다같이 이롭고 편해지며 안전을 기약한다. 그래서 질서가 국민의식 수준과 비교되고 선진의 주춧돌로 일컬어진다.
이번 연휴는 교통사고 왕국이란 오명을 씻고 질서를 못 지키는 한국인이라는 불명예를 털어 버리는 모처럼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는 안전하고 편안하고 명랑한 귀향이 되고 사고로 얼룩진 연휴가 안되도록 다같이 협조하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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