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근로자의 경영참가' 왜 문제 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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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중학교 2학년짜리 아들이 하나 있어요. 아이의 장래 희망은 사업가랍니다. 공부를 곧잘 해 기자가 된 자기 아빠 월급이 시원찮은(?) 모양이에요.

대견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사업가가 되겠다는 게 영 마뜩찮네요. 속된 말로 잘하면 대박이지만, 못하면 쪽박 차는 게 사업가거든요.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같이 망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부도내면 감옥에 가기 때문에 위험은 훨씬 커요. 한번 망하면 거의 재기하질 못해요.

또 회사 직원에게 줄 월급 걱정하는 사장들이 숱해요. "월급날이 되면 하늘이 노래진다"거나 "월급날이 왜 이리 빨리 돌아오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하소연을 많이 들을 수 있어요.

사업은 이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베팅을 하는 것이죠. SK 최태원 회장은 수십조원에 달하는 회사를 물려받았지만, SK글로벌 등 몇몇 회사의 경영을 잘못하는 바람에 자기 재산을 몽땅 날릴 위험에 처해 있어요.

얼마 전 자살한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도 마찬가지예요. 국내 최대 그룹을 상속받았지만, 살고 있는 집마저 친척에 담보로 잡히는 바람에 누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집까지 날리게 될 상황이었지요.

그러나 근로자는 다르지요. 적어도 월급을 줄 걱정은 하지 않아요. 또 회사가 망해도 전 재산을 날릴 위험이 없어요. 이런 점들 때문에 근로자가 기업의 주인이 될 순 없어요. 자신의 전부를 걸고, 회사와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는 사업가가 기업의 주인일 수밖에 없어요.

또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가 주주총회이며, 주총은 주주들의 모임이라는 데서도 주주가 기업의 주인임을 알 수 있어요.

요즘 한창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근로자의 경영 참가'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따져봐야 할 것 같아요. 경영은 기업의 주인인 사업가가 맡는 게 원칙이라는 얘기예요.

물론 '기업 경영'이 직업인 전문경영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근로자 중에서 경영을 잘 할 만한 사람을 뽑아 경영을 맡길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사업가의 의사에 따라야 해요. 노조의 경영 참가권 문제로 어수선한 현대자동차의 경우를 살펴볼까요.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어떻게 조달하고(자금관리), 어떤 물건을 만들며(생산관리), 어떤 사람을 쓰는지(인사관리)입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지난 5일 노사가 합의를 하면서 어떤 자동차를 어디서 얼마만큼 만들지, 그리고 어떤 사람을 쓰는지에 대해 노조가 동의해야만 할 수 있도록 했어요.

공동결정권을 노조에 줬다는 얘기지요. 예를 들어 새로운 차종을 개발하거나, 이 공장에서 생산하던 차량을 다른 공장으로 옮겨 생산할 때 노사공동위원회의 의결을 받게끔 됐어요. 또 사업을 확장하거나, 장사가 안돼 공장끼리 합치거나, 다른 주인에게 매각하는 것도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해요. 사람을 쓰는 문제도 노조의 동의를 받게 됐지요.

현재 재직 중인 근로자들은 정년인 58세까지는 고용이 보장됐으며, 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회사가 노조 동의없이 정리해고나 희망퇴직을 실시할 수도 없게 됐어요. 현대자동차의 사업가인 정몽구 회장은 자신의 전부를 회사에 걸었지만 무슨 물건을 얼마나 만들지, 어떤 사람을 어떻게 고용할지 등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게 된 것이죠.

아이러니컬한 것은 현대차 노조가 경영에 참여하는 만큼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는 것이에요.

지난 6월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이 네덜란드식 노사모델과 근로자의 경영 참가를 주장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노사가 합의하고 공동 결정하는 경영 참가가 아니라 노조가 회사에 제의.협의하는 수준의 '낮은 단계의 경영 참가'를 언급했을 뿐이에요.

결정권은 회사 측이 가져야 한다고 잘라 말했어요. 이런 유형의 경영참가는 이미 우리나라도 시행하고 있어요. 노사협의회란 기구가 그것이에요. 근로자들이 회사에 필요한 것을 요구.제안.협의하는 법적 조직이죠. 그러나 이는 현대자동차처럼 근로자와 회사가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가부 동수면 부결된 것으로 하는 공동 결정방식의 경영 참가는 아닙니다.

전문가들 중에는 李실장처럼 근로자의 경영 참가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해고 등 아무리 근로자의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라 하더라도 노사가 공동 결정하는 수준의 경영권 참가를 지지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은 듯해요.

오히려 사업가의 경영권을 인정하되 대신 사업가에게 제의.협의하는 노사협의회식 경영 참가나, 회사 일의 공동 결정보다 보너스 추가 지급이나 종업원 지주제 등의 경영성과 및 자본 참가 등의 경영 참가를 지지하는 전문가들이 더 많다고 하네요.

김영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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