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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진 게 없어서 서촌에 둥지…거짓말처럼 1년 만에 단골 생겨

중앙일보

입력

| 외식업을 움직이는 사람들 ② ‘서촌 황태자’ 이재훈 셰프

‘까델루뽀’ 이어 비스트로·와인바·펍
인근 가게보다 인테리어에 3배 투자
20~30대 여성 감성에 어울리는 공통점


상권보다 중요한 건 진정성과 노력
비 오는 날엔 손님에게 수건부터 건네
대화 나누고 SNS에 일일이 감사 댓글

이재훈 오너셰프는 50여 년 된 서촌의 작은 한옥들을 고쳐 자신만의 색을 담은 레스토랑 5개를 운영 중이다.

이재훈 오너셰프는 50여 년 된 서촌의작은 한옥들을 고쳐 자신만의 색을 담은 레스토랑 5개를 운영 중이다.

오래된 한옥과 재래 시장, 소박한 골목의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서울 서촌은 마치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3~4년 전부터 도심 생활에 지친 이들이 즐겨 찾는 서울의 대표 거리 중 하나가 됐다. 그런 서촌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까델루뽀’의 이재훈(37) 오너셰프다. 까델루뽀 성공 이후 비스트로·와인바·펍·함박스테이크 전문점 등 각각 다른 컨셉의 식당 5곳을 서촌에 잇따라 열며 ‘서촌 황태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서촌에서 이 셰프를 만났다.

서촌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서촌과의 인연은 2011년 시작됐다. 물론 사업 측면에서 강남이면 더 좋았겠지. 하지만 가진 게 없는 젊은 요리사에게 강남 같이 월세 비싼 곳은 감당하기 힘들다. 그때만해도 서촌은 유동인구가 별로 없어 임대료가 쌌다. 임대료 아껴 요리에 투자하고 싶었다. 원래부터 ‘작은’ 식당을 하는 게 꿈이었다. 강남의 빨리 변하는 트렌드, 경쟁적인 분위기에 지치기도 했다. 2009년 이탈리아 요리 유학 후 돌아와 약 2314㎡(700평) 규모의 대형 레스토랑에서 총괄 셰프로 일했다. 30대 나이 치고 꽤 좋은 조건이었는데 일할수록 회의감이 들었다. 내 요리를 먹는 사람과 교감할 수가 없더라. 2년 만에 관뒀다. 그때 아는 사람 소개로 서촌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까델루뽀’에서 일하게 됐다. 3개월 후 가게를 아예 인수했다. 주인은 ‘인건비와 월세 내고나면 남는 게 없는 골치덩어리’라며 가게를 넘겼다. 내가 직접 요리 하니 인건비는 안 줄었지만 정말 남는 게 없었다. 한 1년 동안 웃지도 못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이재훈 셰프가 식당 운영에 큰 도움을 받은 책 『장사의 신』의 저자 우노 다카시. [사진 쌤앤파커스]

이재훈 셰프가 식당 운영에 큰 도움을 받은 책 『장사의 신』의 저자 우노 다카시. [사진 쌤앤파커스]

"책 한 구절이 인생을 바꾼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일본 요식업계의 신으로 불리는 요노 다카시의『장사의신』을 보니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많다는 걸 깨달았다. 큰 게 아니라 소소한 것들 말이다. 책에는 매일 자기 가게 앞을 쓸면서 옆 가게 앞도 쓸라고 나온다. 좋은 인상을 주는 집, 그래서 누구나 한번 가면 다시 찾고 싶은 집을 만들라는 얘기다. 책 읽기 전엔 생각도 못했다. 그때부터 옆 가게 앞까지 청소하고 파스타를 만들면 바로 옆 빵집에 갖다줬다. 직원 식사용으로 만든 카레도 넉넉하면 옆집에 줬다. 요즘은 음식까진 못주지만 옆 가게 앞 담배 꽁초와 쓰레기 정리는 계속 하고 있다. 고객을 위한 서비스도 배웠다. 비가 오는 날 손님이 오면 빗물을 닦을 수 있도록 수건을 먼저 준다. 식당에 들어왔을 때 기분이 좋으면 식당에 대한 기억이 좋게 남을 수밖에 없다. 거짓말처럼 1년이 지나자 단골이 생겼다. 1주일에 3~4번씩 오는 사람이 늘면서 2년째 부터 수익이 났다. 돌이켜보니 상권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진정성을 갖고 일하면 손님은 온다. 서촌만 해도 주차가 어렵고 골목골목 찾아오기 힘들지만 그래도 찾아온다. 이탈리아에서도 유명 레스토랑은 아주 허름한 골목이나 산골에 있는 곳이 많다. 셰프의 진심과 노력은 통한다."

2호점으로 까델루뽀와 완전히 다른 성격의 매장을 낸 이유는.


“까델루뽀는 격식 갖춰 코스 요리를 내는 다이닝이다. 좀더 편안한 분위기의 와인바를 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다른 사람도 편하게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2013년 연 게 ‘에노테카 친친’이다. 문제는 임대료였다. 까델루뽀가 알려질 즈음 서촌이 유명세를 타면서 사람이 몰렸다. 임대료가 순식간에 3배 이상 치솟았다. 임대료가 저렴한 곳을 찾다 통인시장 안쪽 골목인 옥인길까지 오게됐다. 까델루뽀에서 걸어서 10분쯤 걸리는 옥인길은 그때까지만해도 골목 전체에 가게가 2~3개뿐일 정도로 서촌 바람에서 벗어나 있었다. 박노수 미술관 앞 60여년 된 허름한 한옥이 나온 걸 보고 바로 계약했다.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나도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가슴엔 ‘성북구 레오나르도’라고 적힌 명찰을 달았다. 고객들이 흥미를 갖고 직원들에게 말 한 마디 건낼 수 있는 콘텐트를 만든 거다. 문 연 지 1주일이 지나니 20석의 좌석이 다 찼다. 지금도 에노테카 친친은 늘 만석이다.”

인테리어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에노테카 친친’은 겉에서 보면 낡은 한옥이지만 내부는 이렇게 깔끔하다.

인테리어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에노테카 친친’은 겉에서 보면 낡은 한옥이지만 내부는 이렇게 깔끔하다.

서촌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고집했다기보다 실용적 이유다. 가까운 곳에 있어야 언제든 가보면서 관리할 수 있으니까. 식재료를 함께 쓸 수도 있고. 두 곳이 성공하니 자신감이 생겼다. 내 기억을 하나씩 담고 싶었다.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와 경양식집에서 함박스테이크 먹던 추억을 떠올리며 ‘친친함박’을, 영화 ‘해리포터’에서 학생들이 길다란 테이블에 함께 앉아있는 걸 보고 ‘친친 원테이블’을 열었다. 모두 내 식당이지만 컨셉이 다르니 갈 때마다 재미가 있다.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20~30대 여성의 감성에 어울린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감성을 녹였다. 난 남자지만 내 감성과도 일치한다. 와인 마시며 부활의 ‘론리 나이트’을 듣고 싶은 여자는 없을 거다. 스피커는 인위적으로 잡음이 나도록 해 아날로그저인 감성을 담고, 조명은 어둡게 해 예뻐보이도록 했다.”

꽃과 그림으로 꾸민 원테이블 레스토랑 ‘친친 원테이블’.

꽃과 그림으로 꾸민 원테이블 레스토랑 ‘친친 원테이블’.

서촌 부동산 업주들이 다 알 것 같다. 매물이 생기면 바로 연락이 오나.


“그렇다. 부동산 업주보다 건물주가 나를 좋아한다. 월세 시세가 100만원이라면 나한테는 20~30%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다. 내 매장이 들어가면 건물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해서다. 실제로 손님이 많기도 하고 내가 가게에 투자를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인근 다른 세입자보다 3배 이상 많은 돈을 인테리어에 쏟는다. 그 비용이 아깝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식당에서 요리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인테리어다. 누군가는 요리만 맛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건 틀린 얘기다. 10만원 짜리 낚시대와 100만원 짜리 낚시대는 물고기를 낚을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다르다. 아무리 잘난 강태공도 10만원 짜리로 100만원짜리 능력을 발휘하기는 힘들다. 인테리어도 마찬가지다. 손님이 왔을 때 좋은 인상을 줘야 한다. 화장실도 예뻐야 한다. 식당 어느 자리에 앉아도 음악이 거슬리지 않고 잘 들려야 하는 것도 기본이다.”

요리는 좋아하지만 식당 경영은 어렵다고 말하는 셰프가 많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요리사가 요리 잘한다고 안주하면 안된다. 요리 잘하는 사람은 많다. 요리 만으로는 메리트가 없다. 고객에게 요리가 아닌 요리사 자신을 먹여야 한다. 요리를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고 마케팅적인 능력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요즘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는 사람이 많다. SNS등에서 회자될 수 있도록 해시태그를 걸면 즉시 할인해주는 이벤트를 한다. 고객과의 유대 관계도 중요하다. 잠깐 시간을 내 식당에 온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 인스타나 페이스북에 내 가게에 방문해 올린 글을 찾아 ‘좋아요’나 ‘하트’를 누르고 감사하다는 댓글도 쓴다. 하루에 20~30개 정도의 피드가 올라오는데 일일이 다 찾아다닌다. 너무 피곤해서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든 날을 제외하곤 이 일을 놓지 않는다. 고객 대부분은 요리에 뭘 넣고 어떤 소스에 몇 시간을 졸이는지 이런 내용 보다 알아보고 기억해주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편안한 분위기의 ‘비스트로 친친’.

편안한 분위기의 ‘비스트로 친친’.

롤모델이 있나.


“감사한 사람은 있다. 아버지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늘 사업을 한다고 했지만 한 번도 집에 돈을 가져오진 않았다. 성공한 적 없이 실패만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배운 게 많지만 특히 두 가지를 꼽고 싶다.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돈 없어도 늘 자신만만한 태도다. 이탈리아 유학갈 때 아버지는 ‘내가 돈 보내줄테니 일단 가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지만 아버지의 그런 긍정적인 모습이 힘이 됐다. 요리학교 유학은 주변에서 아버지만 찬성했다. 다들 돈벌어 결혼자금이나 모으라며 말렸다. 아버지의 믿음 덕분에 3년 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아 다녀왔다. 아버지는 내게 ‘성공하는 법은 몰라도 실패하는 법은 수백가지 알고 있다’고 항상 말했다. 직원 관리에 대한 조언은 실제로 사업하면서 큰 도움이 됐다. 주방은 수직적 위계질서가 강한데 나는 수평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버지는 ‘직원들이 돈을 벌어다주는 것인 만큼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라’고 강조했다.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을 듣는 직원은 오래 일하지 않는다. 의견을 묻고 비전을 공유하면 오래 같이 할 수 있다. 현재 20명의 직원 절반 이상이 식당 오픈 멤버 그대로다. 요리할 기회도 점점 더 많이 준다. 전엔 내가 요리를 다 했는데 그렇게 하니까 직원들이 발전하지 못하더라. 또 오래 일한 직원에겐 수익의 일부를 나눠준다. 이렇게 하니까 열심히 일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긍정적 성격과 사업 노하우를 알려준 아버지와 2016년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했다.

긍정적 성격과 사업 노하우를 알려준 아버지와 2016년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했다.

앞으로 계획은

“3월, 늦어도 4월 중에 고양시 일산에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브런치 레스토랑 2개를 낸다. 서촌의 작은 매장들은 내 색깔대로 가져가되 다른 지역에서도 내 요리를 먹을 수 있도록 할 거다. 이번엔 투자를 받기로 했다. 경영은 다른 사람이 맡고 난 메뉴와 직원 교육을 맡아 직원 교육에 집중할 예정이다.”

이재훈(37) 셰프

1999년 경신고등학교 졸업

2008년 이탈리아 ICIF 최우수 졸업

         이탈리아 토스카나 그로타 쥬스티 호텔

         (Grotta giustin hotel)의 미쉐린1스타

         레스토랑 ‘라베란다’(La veranda) 근무

2009년 T3entertainment 총괄셰프 (재미스, 행복한 그녀들, la bella)

2011년 서촌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까델루뽀’ 인수

2014년 이탈리안 ‘에노테카 친친’ 오픈

2015년 ‘비스트로 친친’ ‘친친함박’ ‘친친원테이블’ 오픈

2016년 신세계백화점 경기점(용인시) ‘친친함박’ 오픈




글=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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