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지는 정책 발표들...맛도 영양가도 모두 갖췄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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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일자리 대책이네요. 정부에도, 대권 후보자들에게도 기대할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딸 셋을 키우는 입장에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설익은 면피용 정책들 앞다퉈 내지 말고 #정성 깃든 곰탕같은 정책 하나 내놓길

지난 17일 한 대기업 임원이 모바일메신저를 통해 보내온 메시지다. 정부가 16일 발표한 20개 일자리 과제가 무성의하고 ‘보여주기’식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기자의 기사를 보고 답답한 소회를 밝혀온 것이다. <본지 2월 17일 자 B2면>

기자는 어쩌면 앞으로 이런 메시지를 더 많이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달과 다음 달 각종 대책과 정책 발표가 줄줄이 나오기 때문이다. 제목만 보면 ^내수활성화 대책^무역투자진흥회의^일자리 과제 구체화 계획^청년층 일자리 대책 등이다. 정권 말기의 정부 행보로 보기에는 이례적일 정도다. 물론 공무원이 열심히 일한다는 건 칭찬해 줄 일이다. 문제는 공무원이 과연 일을 많이 하는 것인지, 일하는 시늉만 많이 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발표된 경제정책방향이나 올 초 각 부처의 업무보고, 지난주의 일자리 과제 지정까지 최근 발표된 정책 자료들에서 참신한 내용을 찾기란 어려웠다. 알맹이나 실효성 있는 내용이 없는데도 정책 발표 횟수가 많다는 건 정부가 정책의 내용보다는 발표 자체에 더 치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나쁜 환경이란 건 잘 안다.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공무원이 제대로 일 할 수 있는 여지는 적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대로 익지도 않은 상황에서 의무적이고 기계적으로 뭔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정책들을 줄줄이 내놓는 거라면 우려할 일이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국민이 기댈 곳은 정부 뿐이다. 정부가 대책을 발표한다고 하면 ‘혹시나’하는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맹탕’, ‘재탕’, ‘삼탕’ 정책인 것으로 확인되면 그 만큼 실망감이 커지고 정부에 대한 불신만 깊어진다.

어린 시절 병원에 가기 싫어하던 기자에게 어머니는 줄줄이 사탕을 ‘당근’으로 내놓았다. 화려한 색감과 달콤한 맛, 무엇보다도 몇 개를 먹어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그 압도적인 양에 매료돼 너무도 쉽게 병원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그걸 다 먹고 난 뒤의 결과물은 썩은 이와 해로운 당분의 축적 뿐이었다.

혹여 정부가 나쁜 환경을 핑계로 화려한 포장과 많은 양으로, 줄줄이 사탕처럼 국민을 유혹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버리는 것이 좋겠다. 단 한 그릇이라도, 핏물을 제거하고 응고된 불순물을 걸러낸 뒤 수십 시간을 정성으로 고아내 만든 ‘진국 곰탕’을 대접하는 것이 국민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박진석 경제부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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