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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해운 경기 낙관론’의 가벼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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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전영선 산업부 기자

전영선
산업부 기자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이 뒤섞여 있어 혼란스러울 때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면 자유로워진다. 마음의 준비를 한 만큼 웬만한 사달에도 멘탈이 붕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생각보다 잘풀리면 다행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악몽이다.

요즘 조선업계에선 올해 업황이나 대우조선해양 처리 문제에 대한 혼재된 신호가 동시에 쏟아진다. 유가가 1t당 50달러를 오르내리기 시작하자 유조선과 드릴십 등이 추가로 필요할 테니 실적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해양플랜트 발주 재개에 대한 기대도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처음 도전할 때와 달리 이미 비싼 수업료를 낸 만큼 지금 하면 잘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실제로 해양 플랜트 기획 한참 전 조선사가 개입을 시도하는 등 조금은 더 영리해진 모습이다.

그러나 유가는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셰일가스, 셰일 오일을 대대적으로 파내겠다고 한다. 에너지 시장 움직임이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힘들다.

무섭게 확장하던 중국 조선소들은 요즘엔 하루에도 수십 개씩 문을 닫는다. 출혈 수주 경쟁은 확실히 감소했 다. 하지만 이런 징후는 중국조선업의 질적 성장 신호탄으로도 볼 수 있다. 이들이 아직은 한국 조선사만 만들 수 있는 선박 사양으로 눈을 돌리면 또 끝없는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물론 이런 우려에 대해 역시 ‘그렇게 쉽게 축적되는 기술이 아니다’는 낙관과 ‘중국의 무서움을 아직도 모른다’는 지청구가 혼재돼 있다.

선박 발주의 또다른 축 중 하나인 해운사들은 아직 사정이 어렵다. 한국은 물론 세계 해운사들이 마찬가지다. 세계 최대 규모인 머스크까지 휘청이고 있어 신규 선박 주문 규모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중고시장 매물이 많으면 선가는 또 떨어진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축적된 경험이나 통계, 사이클 등을 이용해 하던 업황 분석이 무의미할 정도로 변수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차라리 점을 보러 가는 것이 마음이 편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상황이 이러니 최악을 가정해야 한다. 최악이라면 ▶해운사 실적 악화 ▶유가 하락 혹은 유지 ▶해양플랜트 프로젝트 중단 ▶중국과 고급 선박 경쟁 ▶예측불가의 트럼프 행정부 ▶여기에 도무지 경제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흐를 것이라 기대하기 힘든 국내 정치까지.

그에 비해 정부는 참 해맑다. 대우조선해양 유동성 위기를 진앙지(중 하나)로 하는 4월 경제 위기설에 대해 정부가 15일 ‘낭설’로 일축하는 입장을 내놨다. 그럴 때는 아닌 듯 하다. 낙관을 빙자해 폭탄을 다음 주자에게 넘기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전영선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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