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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 뭔지… 사람도, 나무도 뜨내기가 되는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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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믹스라이스의 조지은(왼쪽)·양철모 작가. 두 사람은 부부다. 이들이 들고 있는 조형물은 씨앗, 이끼 등을 떠올리며 식물의 고갱이를 형상화한 작품.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믹스라이스의 조지은(왼쪽)·양철모 작가. 두 사람은 부부다. 이들이 들고 있는 조형물은 씨앗, 이끼 등을 떠올리며 식물의 고갱이를 형상화한 작품.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나무들, 생김새만큼 사연도 다양하다. 수백 년 세월을 마을에 뿌리 내리고 살아온 나무, 개발로 공사판에 나홀로 남은 나무, 공사를 피해 인근에 옮겨졌다 죽어가는 나무, ‘명품 조경’으로 고급 아파트에 이식됐으나 죽어버린 나무, 제법 근사하게 자랐지만 재개발로 사라질 오래된 주공아파트의 나무…. 결코 행복한 사연은 아니건만 이를 담아낸 2인조 미술가그룹 믹스라이스의 영상작품은 퍽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나무 대신 다닥다닥 집들만 산을 이룬 곳을 담은 장면조차 그렇다. 특히 나무들이 품은 수백 수십 년의 시간, 그 뒤에 어른거리는 공동체의 기억은 개발·재개발에 지친 눈과 마음에 위로마저 안겨준다. 이같은 영상과 설치작품·그래피티·인쇄물 등 ‘오늘의 작가상 2016’을 수상한 믹스라이스의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19일까지 이어진다.

2인조 미술가그룹 ‘믹스라이스’
포클레인에 찍힌 채 싹이 튼 감나무
고급 아파트에 이식됐다 죽은 나무 …
‘유기식물’이 던진 생각거리들 좇아

“제가 사십이 넘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봐온 게 계속 개발을 하는 풍경이에요. 사람들이 살던 집이 아파트가 되고, 그 아파트가 다시 또 재개발을 한다고 하고. 항상 공사중인 이런 장면을 늙어 죽을 때까지 계속 보며 살아야 하나 생각도 했어요.”(조지은 작가)

“뉴타운 광풍이 몰아치다 경제가 살짝 안 좋아졌을 때 뉴타운 지구에 간 적 있어요. 버려진 화분들, 집을 철거하며 포클레인으로 파쇄한 감나무에서 개발이 정체되니까 새싹이 나오는 거에요. 저희는 그걸 유기식물이라고 불렀죠. 유기견이나 유기고양이처럼.”(양철모 작가)

전시장에 인쇄물로 선보인 사진. ‘420년의 느티나무, 남양주 다산 신도시, 2016’. [사진 믹스라이스]

전시장에 인쇄물로 선보인 사진. ‘420년의 느티나무, 남양주 다산 신도시, 2016’. [사진 믹스라이스]

두 작가는 얼마 전 서울관에서 열린 공개행사 ‘믹스라이스와의 대화’에서 ‘식물의 이주’에 관심 가진 계기, 이번 전시의 구상과정 등을 이렇게 들려줬다. 며칠 뒤 서울 상암동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다시 만났다. "이 주변은 아무 것도 없는게 마음에 들어요.(도시에 살면) 개발을 보는 스트레스, 공간의 스트레스가 있잖아요. 주차도 그렇고. 그러니 남을 봐줄 여유도 없는 거죠.” 조지은 작가의 말을 양철모 작가가 받는다. “폐허가 있으면 재미있을텐데. 전 어렸을 때 집과 집 사이에 이상한 공간, 골목 안 골목 같은 데를 탐험하며 놀곤 했어요.” 다시 조지은 작가다. “공터도 많아 공터에서 놀았죠.”

성장기에 골목과 공터를 체험한 이들은 ‘응답하라 1988 세대’, 또 다른 의미에선 ‘월드컵 세대’다. 이주노동자에 주목한 계기를 묻자 조지은 작가는 대뜸 “2002년 월드컵”이라고 했다. “세계화, 세계화 하는데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세계화잖아요.” 믹스라이스는 2002년부터 줄곧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다양한 활동을 마석가구단지 등을 중심으로 펼쳐왔다. 믹스라이스(mixrice)란 이름도 자주 만나는 이주노동자들이 쌀을 먹는 아시아 출신인 데서 나왔다.

‘개발예정지구, 개포동 주공아파트, 2013’. [사진 믹스라이스]

‘개발예정지구, 개포동 주공아파트, 2013’. [사진 믹스라이스]

‘식물의 이주’는 고급 아파트에 이식된 나무를 비롯, 개발·재개발로 사라지거나 사라질 나무의 살던 곳을 추적·답사하며 2012년 시작한 작업이다. 이주노동자, 식물의 이주, 개발·재개발을 아우르는 개념을 양철모 작가는 “뜨내기”라 표현했다. 사람도, 나무도 뜨내기가 되는 세상에 대한 이들의 고민은 공동체, 특히 그 지속성에 대한 고민과 연결된다. “‘고사리 꺾기’라고, 사람들이 고사리 모양으로 움직이며 안과 밖이 연결되는 대동놀이에요.” 전시에 곁들인 그림에 대한 조지은 작가의 설명이다.

믹스라이스는 오는 10월에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가 개관 40주년을 맞아 ‘코스모폴리스 ’란 제목으로 새로 시작하는 비엔날레에 참가한다. “이주, 식물의 이주에 대한 작업을 선보일텐데 현지 맥락에 맞게 재구성해야죠. 난민이 참 많잖아요. 지난번에 가서 리서치를 하기는 했는데 그걸 다 담을 수는 없을 것 같고.” 이번에 선보인 영상의 마지막에는 깊은 산속인듯, 사람과 나무가 신비롭게 겹쳐지는 퍼포먼스 장면이 등장한다. 웬걸, 이주노동자들이 가끔 놀러가는 마석가구단지 야산에서 찍은 거란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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