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의 유연한 자세|김동수 외신부장대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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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독일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시의 지하철역 프리드리히 슈트라세 정거장. 동독의 주요 기관이 밀집돼 있는 구역 바로 밑의 이 지하철역에서 서베를린시가 운행하는 열차에 3분 간격으로 끊임없이 오가는 동·서독 시민들이 타고 내린다. 베를린에서 동·서베를린 시민이 왕래하는 통로중 가장 붐비는 곳이다.
서독 시민이면 누구나 1년에 30일 한도로 동독을 여행할 수 있기 때문에 오가는 승객들이다. 분단국이면 의례 긴장과 적대감으로 젖어 있는 것으로 인식돼온 한국인이 직접 동·서독의 교류현장을 볼 때 느끼는 당혹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서독시장에 넘쳐흐르는 동독의 상품들, 다이얼만 돌리면 직접 동독 어느 곳에나 통화할 수 있는 전화, 자유로운 우편교환등은 신기하게만 보인다.
동독의 경우 동구권 국가중에서도 주변의 폴란드·체코·헝가리등에 비해 가장 고조적이고 완고한 공산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 외교형태나 서독과의 교류면에선 적어도 한국인의 눈에서 보자면 그렇게 유연할 수가 없다.
동독시민의 90%가 서독의 라디오·TV방송을 제한없이 시청할 수 있고, 심지어 서독방송의 난시청 지역에서는 관광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중계소까지 설치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동· 서독 모두 상대방에 관한 정보를 차단하기보다 서로가 실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이해하도록 하면서 자기네 정책을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자기네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겠다는 정책이다.
분단이후 이러한 교류에 바탕을 둔 동·서독간에서로 국가원수가 방문할 수 있는 배경에는 양측이 갖고 있는 분단독일에 대한 공동인식과 상호 신뢰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양측 지도자들 모두가 2차대전후의 유럽 불안정이 나치스독일에 연유한다는 책임공동체의식이다.
작게는 분단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주변국가의 평화를 위해서는 동·서독이 똑같이 책임을 지고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아직도 초보적인 교류의 실적도 없이, 고차원적인 정치회담을 서두르며 상호 신뢰감 조성도 못하고 있는 남북한관계에 미루어 「호네커」의 서독 방문은 그런 면에서 음미해 볼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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