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부재의 분규|일부 「인성의 타락」을 개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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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제 갈때까지 간것이 아닌가. 요즘일고 있는 노사분규가 노사의 차원아닌 인륜의 부재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의 입에선 개탄과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시설과 기물을 닥치는대로 박살내는가 하면 국가의 재산이요, 국민 공동의 소유물인 공공시설에 불을 지르고 차량을 부수거나 방화하고 있다.
파업에 동조하지 않는다 해서 지나가는 택시를 세우고 운전기사와 승객까지 싸잡아 두들겨 패는 불법과 폭력이 백주에 난무하기도 한다. 철로와 공로를 점거, 불통시키거나 엄청난 인파로 시가지를 점거하여 한 도시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어제까지 한 솥 밥을 먹으며 지시를 받고 따르던 사장과 임원들을 알몸으로 옷을 벗겨 땅에 꿇어 앉히는가 하면 나무에 매달아 놓고 배를 발로 차는등 행패로 모욕을 가하는 일도 있었다 한다.
이처럼 앞뒤를 가리지 않는 근로자들의 행동 앞에 자제니 타협이니 하는 낱말 자체가 한낱 공허하고 무기력한 허구라고 느껴지기 까지 한다. 아무리 불만이 쌓였다고 해도 그 직장을 세우고 이끌어 온 기업주와 상사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일은 무슨 명분으로도 합리화 할수 없다.
더구나 자유민주체제 국가에서 그것은 체제를 부정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위계질서는 물론이요,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마저 진흙탕에 던지는 인간부재의 상황이다.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불지르고 때려부셔도 상관이 없다는 사고방식은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요즈음 세태에서 연유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의리와 친애와 분별과 질서와 신의를 존중하는 인륜을 지키며 살고 있다고 믿어 뫘다. 그것은 오랜 역사의 질곡속에서도 정치의 마지막 지주이고 경제번영의 정신적 원동력이며, 사회발전의 뿌리가 되어왔다.
오늘 우리는 어렵사리 정치위기를 극복하고 온 국민이 염원해온 민주화로 가려는 마당에 노사분규의 혼란을 겪으며 민주화의 원천인 경제의 위기는 물론이요, 우리 사회의 정신적 근간인 도덕의 위기까지도 맞고 있는 것이다.
결국 노조의 극렬한 분규는 사회의 근본마저 흔들어 대는 극한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노사분쟁의 진정이라는 눈앞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생존모럴과 지향이 무엇인가를 자문해 보는 비장한 순간에 와 있는 것이다.
그동안 피나는 노력끝에 이룬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의 결과가 과연 요 모양인가 자괴(자괴)도 하게 된다. 우리는 그동안 정신적, 도덕적, 심성적인 성숙은 없었다는 말인가.
이번의 참담한 노사분규를 우리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실로 문화국민의 모습을 만방에 보여줄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때는 늦지 않다. 국민적자각과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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