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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커플의 재회, “우리 다시 사랑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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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호 28면

‘대학 생활의 로망’ 중 하나라면 캠퍼스 커플, 즉 CC다. 교정을 거닐다가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을 때의 그 두근거림이라니. CC의 추억을 떠올릴 때면 한 작가가 생각난다. 그는 대학 때 CC만 다섯이었다고 했다. “헐다섯 명을 동시에 사귄 거예요 ?”

이지민의 “오늘 한 잔 어때요?” <21> 락희펍

그게 아니라 특정 활동을 함께하는 짝꿍 개념이란다. 밥 먹는 CC, 공부하는 CC, 영화 보는 CC, 오목을 함께 두는 레저 CC, 그리고 마지막은 집에 같이 가는 CC였다. 처음엔 다들 친구처럼 지냈는데, 시간이 갈수록 한쪽으로 마음이 쏠렸다고 했다. 바로 집에 함께 가는 CC였다. 8개월 동안 매일 등하교를 함께했고, 둘 다 술을 좋아해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집 근처 주점에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러니 정이 쌓일 수밖에.

그런데 의외로 프러포즈는 그녀가 했다. 마침 발렌타인데이였고, 평소처럼 함께 집으로 가던 중 그녀가 초콜릿을 건네며 무심한 듯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 있어?” “아니 없어” “그럼 나 좋아하면 안 돼?”

그 뒤 3년간 둘은 진정한 커플이 되어 모든 걸 함께했다. 하지만 20대의 만남은 변수가 많다. 그녀가 긴긴 어학연수를 떠나면서 둘의 인연은 끊겼다. 그리고 12년이 흘렀다.

동창회가 있던 날 그녀가 나타났다. 다행스럽게도 둘 다 싱글. “잘 지냈어?”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마치 어제 본 것 같은 익숙함. 옛 추억이 떠오르니 가슴이 뛴다. 역시 우리는 인연일까? 술 자리가 파하고 집에 가는 길에 조심스레 “이번 주말에 술 한잔할까?” 하고 말을 건넨다. 그녀의 대답은 예스.

오랜만의 어색함을 깨고 기분 좋게 마실만한 곳을 추천 달라는 그의 말을 듣고 이곳을 떠올렸다. 모던 한식 주점 락희옥(樂喜屋)의 김선희(45) 사장이 새로 문 연 ‘락희펍 ’. 락희옥은 즐거움과 기쁨이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미식가들 사이에 소문난 맛집이자 술집이다. 다양한 한식 메뉴에 와인·크래프트 맥주 등 주류 메뉴도 풍성해 주당들이 즐겨 찾는다. 게다가 콜키지 프리 정책이다.

온갖 술을 사랑하고 즐기는 김 사장은 주당들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 음식에는 술이 따라가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그는 좋은 술을 손님에게 권하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한다. 그래서 음식보다 술에 더 비중을 둔 펍을 오픈하기로 마음 먹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과감한 투자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더욱 배짱 있게 주당을 위한 공간을 설계했다.

‘락희펍 ’은 200종이 넘는 술을 갖췄다. 맥주 101종, 와인 47종, 위스키 16종, 기타 주류 11종이다. 각각의 술은 분야별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아 가성비를 따져 엄선했다. 크래프트 맥주 리스트는 매니어도 군침 흘릴만한 핫한 브랜드를 구비했다. 와인은 4~5만원 대의 가격이 50% 이상을 차지한다. 바에서 보통 1만원 중반~2만원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되는 싱글 몰트 위스키는 잔에 1만원이다. 하프앤하프 메뉴는 애주가들 사이에서 핫 이슈인데, 1960년대 스코틀랜드에서 유행하는 음주법을 차용해 위스키 한 잔과 가펠 맥주 하프파인트를 한꺼번에 낸다. 위스키와 맥주를 번갈아 가며 마셔도 좋고, 폭탄주처럼 즐겨도 좋다.

회색벽과 은은한 조명으로 꾸며진 넓고 쾌적한 공간은 술 마시기 딱 좋다. 소규모에서 단체 손님까지 가능하다. 음식은 술에 잘 어울리고, 안주처럼 가볍게 즐기기 좋은 스페인의 타파스(Tapas)로 정했다. 음식 가격은 1만 2000원에서 2만원 사이로 크게 부담이 없다.

12년 만에 재회하는 주당 남녀를 위한 코스를 사장님에게 부탁했다. 시작은 가볍게 콤파스박스 아티스트 블렌드(5000원, 30ml). 부드럽고 은은한 단맛이 있는 블렌디드 위스키로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준다. 다음은 스타터. 속을 부드럽게 채워줄 계란 요리 ‘플라멩코 에그’다. 계란과 채소를 팬에 익힌 스페인식 반숙 계란 오믈렛이다. 향이 좋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핸드앤몰트 슬로우 IPA를 곁들여 가벼운 대화를 이끈다. 다음은 시그니처 메뉴인 감바스 알 아히요 까수엘라. 신선한 통새우를 자작한 올리브오일에 익혀 담아냈다. 샤르도네 품종의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산뜻함을 더했다.

이제 강렬한 자극이 필요한 때. 살짝 튀겨낸 통 문어 다리에 매콤한 쵸리조를 토마토소스와 함께 곁들인 요리 뽈뽀와 락희펍 의 비장의 무기 하프앤하프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몰트 위스키 몽키숄더를 탁 털어 넣는 순간, 긴장은 사라지고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어린다.

사랑의 불씨를 키워줄 모짜렐라치즈 퐁듀와 락희펍 에서 직접 양조장에 의뢰해 만든 브랜디 ‘락희’가 마지막 타자로 등장했을 땐, 둘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했다. 새콤한 토마토 스튜에 후레쉬 모짜렐라치즈를 덩어리째 넣어 담아낸 퐁듀가 문경 사과의 은은한 맛과 향이 배어 있는 사과 증류주 락희를 만나 사르르 녹는 맛을 선사한다. 이쯤 되니 커플이 슬슬 발동 걸리려 하는 느낌. 다시 20대의 모습으로 돌아간 둘은 손을 꼭 잡고 펍을 나섰다고 한다. 왠지 곧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만 같다.

글 이지민 대동여주도(酒) 콘텐츠 제작자 & 음주문화연구가
‘대동여주도(酒)’ 콘텐트 제작자이자 F&B 전문 홍보회사인 PR5번가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있다. 술과 음식, 사람을 좋아하는 음주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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