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고려대의 장학금 실험' 장학금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 `고려대의 장학금 실험` 장학금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고려대 14학번 수정이(가명ㆍ22)는 기초생활수급자입니다.
등록금은 전액 장학금을 받지만 생활비를 구하려면 알바를 뛰어야 합니다.
‘캠퍼스의 낭만’은 언감생심. 홀어머니와 자폐를 겪는 오빠에게 기댈 순 없었습니다.
알바를 뛰니 공부할 시간이 줄고 공부를 못하니 성적은 좋지 않습니다. 악.순.환.
이런 학생에게 장학금을 줘야 할까요.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선 장학금=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주는 포상 이런 도식이 당연시됐습니다.
“공부는 안 하고 장학금만 받는 ‘체리피커’가 생긴다” “공부 잘 할 이유가 없어지니 학습 의지가 꺾인다”  ‘성적 장학금’을 옹호하는 논리는 이런 것들이죠.
그런데 고려대가 지난해 국내 대학 최초로 성적 장학금을 폐지하고 저소득층 지원금을 늘렸습니다.
수정이는 어떻게 됐을까요? 3점대 학점이 지난해 4.3으로 올랐습니다. 물론 수정이 사례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요.
다행히 다른 고대생들도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교육은 자기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수단, 그런데 돈이 없어서 이런 기회를 잃는다는 건 지나친 역설이니까요.
2013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에 따르면 교외 알바를 하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학점이 0.2점 정도 낮았습니다.
작은 차이로 보이지만 실제로 알바가 학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입니다.
아직 고려대의 ‘장학금 실험’은 한계가 있습니다. 부모 소득 파악이 힘든 만큼 저소득층을 알아내는 일이 난관이죠.
하지만 고려대는 선정 기준이 모호하다고 폐지하기보다 보완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중입니다.
부자 학생과 가난한 학생이 ‘공정히’ 경쟁하기 위해 ‘합리적 불평등’을 선택한 고려대의 용기는 박수받아 마땅하지 않을까요?

기획: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구성: 김민표 인턴 kim.minpyo@joongang.co.kr
디자인: 서예리 인턴 seo.ye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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