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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소장도 공석, 위기의 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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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31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퇴임식을 마친 뒤 차량에 오르고 있다. 헌재는 오늘(1일) 전원 재판관회의를 열어 소장 권한대행을 뽑는다. [사진 김현동 기자]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31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퇴임식을 마친 뒤 차량에 오르고 있다. 헌재는 오늘(1일) 전원 재판관회의를 열어 소장 권한대행을 뽑는다. [사진 김현동 기자]

헌법재판소가 31일 임시 소장 대행 체제로 돌입했다. 임기 만료로 박한철(64) 소장이 퇴임했으나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은 탓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재 소장은 대통령만이 임명할 수 있다는 학계의 ‘다수설’을 따랐다. 헌재는 대법원과 더불어 양대 최고 사법기관이다. 헌재 소장은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 다음의 국가 의전 서열 4위 자리다. 국무총리보다 한 단계 높다. 재판관을 겸하는 소장직이 공석이 됨에 따라 헌법재판관은 8인으로 줄었다. 헌법 111조와 헌법재판소법 3조에는 ‘헌법재판소는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한다’고 적혀 있다.

박한철 퇴임 대행체제 시작
법무부는 두달째 장관 없고
대법관 1명도 이달 중 떠나
법조계 “전례 없는 비상국면
법무장관, 이정미 후임 임명
법치 공백 최소화” 의견도

임시 헌재 소장이 된 이정미(55) 재판관의 임기는 3월 13일 끝난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 임명, 대법원장 지명, 국회 지명으로 3명씩 구성하도록 돼 있다. 이 재판관 자리는 대법원장 지명 몫이다. 대법원은 “지금 이 재판관 후임 인선 문제를 꺼내면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법원이 개입하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이유로 지명작업을 미루고 있다. 재판관 7인 체제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대법원에서는 이달 27일 퇴임하는 이상훈(60) 대법관 후임자 인선 절차가 연기됐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중순 대법관 후보 천거 공고를 내려다 취소했다. 대법관은 추천을 통해 선정된 후보를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제청하고, 대통령이 이를 국회에서 동의받는 절차를 거쳐 임명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 학계 다수설이다. 현실적으로 탄핵정국이 끝나기 전에 인선작업을 하기는 어렵다”고 31일 말했다. 27일부터는 대법관 12명이 대법원 재판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법무부 장관 자리도 두 달 넘게 비어 있다. 김현웅(58) 장관이 지난해 11월 29일 자진 사퇴해 이창재(52) 차관이 대행 역할을 맡고 있다. 법무부는 대통령선거 때 검찰·경찰을 지휘하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책임을 진다. 하지만 후임 장관 임명은 기약이 없는 상태다.

헌재와 법무부는 불완전상태가 됐고, 대법원도 곧 같은 운명을 맞게 될 처지에 놓였다. 한 현직 고위 법관은 “전례 없는 사법 비상국면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참여한 지난달 25일의 탄핵심판 변론에서 “국가적으로 매우 위중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이 소장이 없는 공석사태로 불가피하게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31일의 퇴임식에서는 “사회적 갈등과 모순을 조정하고 헌법 질서에 따라 해결책을 찾는 데 있어서는 무엇보다 정치적 대의기관의 적극적 역할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국회에 상황 타개책을 주문했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이정미 재판관 후임자 인선과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대법원장이 이 재판관 후임자를 지명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려 하면 정치적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지만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 권한대행은 현상 유지적 차원에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법무부 장관 임명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글=문병주·서준석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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