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회장 '대국민 성명' 준비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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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 회장은 자살하기 직전 급격한 심경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6월 하순 특검의 수사를 받을 때만 해도 대북사업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였으나 한 달 뒤인 지난달 23일 마지막 북한 방문을 앞두고는 "죄송하다"는 내용의 '대국민 성명서'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鄭회장은 이 성명서에서 "현대가 대북 송금한 돈이 결과적으로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데 쓰였다는 일부 비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을 받들어 현대가 평화통일의 초석이 되기 위해 대북사업을 펼쳤으나 국가적 논란거리로 바뀌었다"고 밝혔다고 현대 관계자는 전했다.

鄭회장은 현대아산에 지시해 이런 내용의 성명서 초안까지 작성했으나 '자칫 모양만 우습게 될 것'이라는 측근의 지적에 따라 발표 직전 포기했다.

이 관계자는 "鄭회장은 아버지와 자신이 추진한 대북사업이 국가와 민족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괴로워했다"고 덧붙였다. 鄭회장은 특히 "국민에게 용서를 빈다"라는 구절도 넣으려 했다는 게 현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鄭회장의 이 같은 태도는 특검팀의 수사가 끝날 무렵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5일 확인된 특검팀의 수사 기록에 따르면 鄭회장은 지난 6월 23일 작성된 A4용지 90쪽 분량의 조서에서 최후 진술을 통해 "저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대북 사업이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대북사업을 더욱 열심히 이끌어갈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특검팀의 한 관계자는 "鄭회장이 특검 수사 도중에도 대북사업을 위해 북한을 다녀오는 등 열정을 보였는데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검 수사에 이어 대검 중수부 수사가 이어지면서 鄭회장이 달라졌다는 게 현대 측 인사들의 귀띔이다. 부하 직원이 줄줄이 소환되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는 "상선.건설 임직원들이 소환되기 직전 '모두 내 책임이다' '내가 시켜서 한 일이라고 진술하라'는 말까지 했다"고 전했다. 현대상선의 한 관계자는 "鄭회장이 대북 송금 공판 과정에서 이 사건에 연루된 정치인들의 진술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
김시래.강주안 기자sr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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