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강보험료, 정의롭고 공평하게 개편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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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지하 월세방에서 힘겹게 삶을 꾸려가던 송파 세 모녀가 세상을 등진 지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들에게는 소득이 없는 데도 매월 부과되는 4만8000원의 건강보험료가 큰 부담이었다. 안타까운 죽음 이후에 세 모녀에 대한 동정이 이어졌다. ‘그들이 고귀한 목숨을 왜 스스로 끊을 수밖에 없었나’에 대한 성찰도 잇따랐다. ‘송파 세 모녀’의 재발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는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서민의 부담을 줄이고 형평을 높이는 방향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이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4년 여의 각고를 거쳐 지난 23일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방안’을 내놓았다. 개편안의 핵심은 저소득 층의 보험료를 낮추고 고소득층은 적정한 보험료를 부담시키는 것이다. 또한 재산과 소득이 많은 사람은 피부양자에서 제외해 보험료를 납부하게 함으로써 가입자 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과 건강보험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다만 국민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3단계로 추진할 예정이다. 개선안이 시행될 경우 송파 세 모녀가 부담했던 4만8000원의 보험료는 1만3000원으로 대폭 낮아진다.

이렇듯 보험료가 인하되는 세대는 전체 지역가입자의 77%인 583만 세대다. 이는 지역가입자 중 저소득층 전체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직장 가입자의 99%는 보험료에 변동이 없다. 다만 금융소득 등 보수 이외의 소득이 연간 3400만원이 넘는 0.8%의 직장인들은 보험료가 인상된다. 피부양자도 연소득이 3400만원을 넘으면 지역가입자로 편입돼 보험료를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583만 세대의 보험료는 인하되고 54만 세대는 인상된다.

지난해 공단에 들어온 민원은 모두 9550만 건이었는데 이중 7400만 건이 보험료 관련이었다. 주로 평가소득과 재산으로 인한 민원이었다. 평가소득 보험료는 소득 자료가 없는 세대에 대하여 보험료를 부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객관성과 합리성이 시대 변화를 못 따라간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번 개편에서 평가소득도 폐지될 예정이다.

소득 중심 부과체계의 개편안에 대한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소득 중심의 보험료 부과체계는 우리처럼 사회보험방식으로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주요 국가들이 시행하는 방식이다. 우리 또한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문제는 이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한 제반 여건 등의 성숙도이다. 우리와 달리, 소득만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주요 국가의 건강보험역사는 100년이 넘는 경우도 있다. 일각의 의견처럼 현 시점에서 소득만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국민수용성과 현실에서 과연 맞는 선택인지 여부는 좀 더 많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일 것이다.

부과체계 개편이 어렵게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 걸음이 대다수 국민과 여론의 호응 속에 보다 정의롭고 공정한 부과체계의 연착륙을 위한 단단한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공단은 건강보험제도 운영 주체로서 진력을 다할 것이다.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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