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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공부] 중학생 100명 중 12명이 또래와 교류 없는 외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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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학교 26곳 교우관계 조사

서울 구로구의 A중학교는 ‘친구’를 주제로 지난해 4번의 설문조사를 했다. 중2 학생 전체에게 ‘숙제를 같이 하고 싶은 친구는 누군지’ ‘한 학기 동안 한번도 말을 걸어보지 않은 친구가 있는지’ 등을 물었다. 학생들은 질문을 읽고 떠오르는 친구의 이름을 다섯명까지 썼다. 4월 첫 조사에서 이 학교 김모양은 ‘함께 숙제하고 싶은 친구’ 5명을 적었다. 그러나 이 질문에서 김양을 언급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교사들은 이 조사를 토대로 김양이 교우관계에서 소외돼 있다고 판단했다.

A중은 설문이 끝날 때마다 중2 교사 전원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 김양처럼 고립된 정도가 심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다. 담임교사는 물론,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관찰할 수 있는 교과 담당 교사들까지 참여해 다양한 시각에서 학생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당시 회의에서 김양의 담임이었던 강모 교사는 “한부모 가정에서 혼자 자란 아이라 친구들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투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과학교사가 “맞다. 조별로 수업할 때 옆에 있는 친구를 놀래키거나 혼자 크게 웃는 등 특이한 행동을 하더라. 어른 눈에는 악의가 없어 보여 괜찮았지만, 조원들은 꺼려하는 게 보였다”고 덧붙였다. 이어 선배 교사들의 경험담, 상담 전문교사의 조언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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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관계망 분석 기법으로 위험군 가려내
강 교사는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어서 교사들이 김양에게 과도한 관심을 표현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억지스럽게 친구를 만들어주기보다는 아이들끼리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자연스레 마련해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체육담당인 강 교사는 김양처럼 소외된 학생들을 돕기 위해 수업 시간에 ‘런닝맨’ 게임을 실시했다.

학생들의 등에 이름표를 붙이고 상대의 이름표를 빨리 떼는 사람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수업이 끝난 뒤 김양은 강 교사에게 뛰어와서 말했다. “선생님, 이거 한번 더 하면 안되요? 친구들이 저를 막 쫓아오고 말을 거는 게 진짜 행복해요.” 강 교사는 “놀이를 통해 함께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관계가 원만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A중이 교우관계 위기군 학생을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한 설문조사 프로그램은 ‘교우 관계망 분석 프로그램’이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후원을 받아 사회연계망 분석(SNA)업체 사이람이 개발했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은 26개 중학교 4800명을 대상으로 이 조사를 실시해 교우관계 실태를 조사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체 학생 중 12%가 또래와 거의 교류가 없는 ‘고 위기군’으로 나타났다. 고 위기군이란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과의 정서적·사회적 지지가 매우 적어 학생들의 관심에서 소외된 학생을 의미한다. 송슬기 사이람 소셜네트워크사업팀장은 “주위에 지지해주는 학생이 거의 없는 학생은 심리적으로 위축돼 학교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심한 경우 자살로도 이어질 수 있어 반드시 사전 진단과 예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런닝맨 게임 등 통해 자연스러운 어울림 유도
이번 조사에 참여한 학교 교사들은 “교육부나 학교에서 실시해 온 기존 조사에선 왕따 학생을 가려내기 어려웠는데 교우 관계도를 보면 위험군이 누구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어 학생지도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특히 “중2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게 효과가 컸다”는 말도 했다. 박현옥 천왕중 상담부장교사는 “중1은 우울증이나 자살위험군 학생을 가려내는 정서행동 특성검사를 실시하고 중3은 각종 진학진로 상담이 이어지는 데 반해, 중2는 관심에서 다소 소외된 경향이 있다. 이 시기에 시행하기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한모 교사는 “외톨이라고 해서 한 가지 개선책을 적용해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교사들끼리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학생 특성에 맞춤 개선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때 작은 일로 사이가 틀어져 지속적으로 소외되고 있던 학생 1명과 갈등 관계인 여러 학생을 한자리 불러 놓고 온갖 이야기를 털어놓게 한 일이 있다.

학생들이 그 자리에서 사소한 감정까지 울면서 다 털어놓은 뒤에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불편했던 교우관계가 해결됐다. 거친 행동을 반복해 친구들 사이에 호감을 얻지 못하던 남학생은 교사가 따로 불러 “이런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나하나 짚어주고 알려주자 “그런 건 줄 몰랐다”며 고치기도 했다. 교우 관계를 잘 맺는 학생이 멘토로 나서 소외된 학생을 보살펴주거나 친한 친구가 있는 반으로 옮겨주는 경우도 있었다.

문경보 대광고 상담교사는 “청소년기 교우 관계는 학생의 인격 형성과 사회성을 기르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인별 성향을 파악하는 조사보다 각자가 관계망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교우관계 문제를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립된 학생들을 어떻게 친구를 맺어주고 집단 안으로 끌어들일지에 대한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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