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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블랙리스트’ 사과한 문체부, 개혁으로 말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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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화체육관광부가 23일 현직 장관 구속 사태까지 빚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송수근 문체부 제1차관 겸 장관 직무대행은 이날 사과와 함께 문화예술계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의기구를 구성하고 부당한 차별이나 개입을 방지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진흥법을 개정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하지만 문체부의 사과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은 여전히 싸늘하다. 문체부는 블랙리스트의 피해자도, 단순한 하수인도 아니고 ‘책임 있는 당국자’이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문화예술인을 편 가르려고 시도했던 권력과 그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른 ‘영혼 없는’ 공무원의 합작품이나 다름없다.

 문체부는 지금의 사태를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로 여겨서는 안 된다. 부서의 존립까지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헌법이 규정한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헌법정신을 훼손하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해치는 폭거다. 더구나 헌법 가치를 수호해야 할 정부 부처가 문화예술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관여했다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적 청산과 체질 개선이 따르지 않는 사과와 대책이 공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체부는 이런 차원에서 특검 수사와는 별개로 진상규명을 위한 자체 조사부터 실시하고 관련자를 찾아 조치해야 한다. 아울러 엄격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문화예술인 지원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문화행정을 개혁해야 한다. 사건 경위를 낱낱이 기록한 백서도 남겨 후대의 경계로 삼아야 한다.

 현재 문체부가 맡고 있는 국가적 과제는 막중하다. 1년여 앞으로 다가온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는 물론 당장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문화예술 시장의 활성화, 외국 관광객 다변화 등 화급한 임무가 한둘이 아니다. 아무리 상황이 뒤숭숭해도 맡은 일은 차질 없이 수행해야 국민의 신뢰를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