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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선 출마설’ 묘한 뉘앙스 풍긴 황교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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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시계가 빨라지면서 조기대선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안희정·이재명·유승민씨의 대선출마 공식 선언이 이어지는 데다 더불어민주당은 설 연휴 전에 당내 경선후보 등록을 시작한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황교안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이 밑도 끝도 없이 나돌고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느냐는 사람들도 있고 주변에서 괜히 군불을 때는 것이라는 반박도 있다. 회를 거듭하면서 수가 불어나고 있는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서 황 대행의 대선출마 요구가 많다.

 어제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선출마설을 묻자 황 대행은 “지지율에 관한 보도는 저와 직접 관련이 없다. 지금은 여러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고 권한대행으로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정을 안정화시키는 게 마땅한 책무”라고 답변했다. 굳이 ‘직접’ ‘지금은’이라는 부사(副詞)어를 사용한 것에서 지난해 국회 답변 때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한 발언과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어떤 다른 조건과 상황이 전개되면 출마할 수 있다는 미묘한 느낌을 준다.

 황 대행의 대선 출마는 헌법적·정치적·행정적으로도 어불성설이다. 대통령 유고 시 승계 조항에 따라 오른 권한대행직의 헌법상 임무는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일이다. 엄정한 보궐선거 관리에 실패해 새 대통령 선출 과정에서 정통성 시비가 벌어지면 그 전까지 황 대행의 실적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나라에 큰 재앙을 안기게 될 것이다. 대선의 공정한 심판역을 맡던 사람이 선수가 되겠다고 뛰어 나오면 선거 운동장이 순식간에 혼란과 무질서에 빠질 게 뻔하다. 황 대행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두 번째 권한대행직을 맡게 될 텐데 그 어깨에 내려앉을 안보·치안·외교·정무 등 국정관리의 무게감을 ‘대행의 대행’이 이겨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황 대행도 엄연히 대통령 피선거권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살얼음같이 위태로운 나라의 운명을 살피고 대선 관리에 진력하는 게 그의 역사적 소명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 황 대행은 그의 마지막 공직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