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건강] 69세 사이클광 허해숙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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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자전거 동호회에선 허해숙(여.69.사진)씨를 '왕 회장'으로 부른다. 그는 30대 후반에서 60대 여성 160여 명이 소속된 자전거사랑연합회장을 4년째 맡고 있다. 지금도 이 동호회에서 '거북이 반'을 이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잘한 일로 그는 "14년 전 자전거와 인연을 맺은 일"을 꼽는다. 그리고 62세이던 1999년 프랑스 파리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장장 2000㎞를 28일간 질주했던 자전거 대장정을 삶의 '화양연화(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생각한다. 그는 "당시 여름이어서 낮엔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렸고, 밤엔 텐트에서 추위에 떨어 몸살이 나기도 했다"며 "100여 명의 완주자 가운데 내가 최고 연장자였다"고 회상했다.

그해 허씨는 정년을 맞은 남편(김철.69)에게 자전거 타기를 강력하게 권했다. 남편은 '감기 두 번 앓으면 겨울이 다 지나간다'고 할 정도로 병약했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강한 체력으로 바뀌었다.

그는 자신의 혈압.혈당.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다 정상이고, 성인병 하나 없는 것은 모두 자전거 덕분이라고 믿는다.

왕 회장의 자전거 예찬론은 끝이 없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난 뒤엔 다리.무릎이 아팠던 적이 없다"며 "자전거는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는 다리운동"이라고 말했다. 또 "심한 당뇨병 환자가 자전거를 타면서 혈당을 낮춘 성공적인 사례도 많고, 갱년기 증상을 모르고 지나가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도 매주 사나흘은 자전거를 탄다. 한번 타면 보통 6시간이다. 시속 20~25㎞로 무리하지 않고 서서히 달리며, 힘들면 충분히 쉰다. 매주 수요일엔 동호회 동료와 함께 조금 멀리 간다.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출발해 여의도나 과천에 다녀 온다. 50㎞가 넘는 거리다. 한 달에 한 번은 더 멀리 간다. 자전거를 트럭에 싣고 강릉에 가서 대관령을 넘기도 한다. 66세 때는 대관령을, 67세 때는 단양과 풍기 사이에 있는 죽령을 자전거로 정복했다. 자전거 타는 엄마.할머니들에게 여의도 코스는 인기가 별로 없다. 너무 순탄한 평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굴곡이 심한 청계산 코스를 선호한다. 인생의 온갖 풍파가 그 속에 있어서다.

왕 회장은 지금까지 자전거 전국 순례도 네 차례나 다녀왔다. 세종문화회관이나 국회의사당에서 출발해 해남의 땅끝마을까지 그는 밥 먹고 자전거만 탔다. 왕 회장은 "40, 50대 여성이라도 자전거에 입문하는 것은 절대 늦지 않다"면서도 "정식으로 자전거 타는 요령을 배우고, 헬멧 착용과 지나친 경쟁을 경계하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왕 회장에게 자전거는 분신과도 같다. 현재 네 번째 구입한 400만원짜리 자전거는 '며느리한테도 물려줄 수 없는 재산목록 1호'라고 자랑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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