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앗아간 원시의 건강|극단 아리랑의 마당극 『장사의 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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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때 「서울의 오프 브로드웨이」로 각광받았던 신촌의 연극무대에서 소문없이, 그러나 잘 꾸며진 마당극한편이 공연되고 있다. 지난해 창단되어 두번째 공연을 갖고 있는 극단 아리랑.의 『장사의 꿈』(황석영작·임진택연츨, 4일까지 신선소극장)이 그것인데, 「잘 꾸며졌다」는 말은 무대·의상등 관객들이 눈으로 호사할 수 있는 부분은 결코 아니다.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의 상징처럼 벽 한가운데에 흰천 하나만이 덩그렇게 걸려있을뿐 다른 소도구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막이 오르면 연극적 분위기를 느낄 수 없는 두명의 배우가 나와 어촌 츨신 장사 차일봉의 몰락과정을 관객들에게 이야기하듯 들려준다.
고향에 개발붐이 일면서 마을이 폐촌으로 변하자 일봉은 청춘의 꿈을 품고 서울로 상경한다. 권투선수·때밀이·불법비디오 배우등을 거쳐 떠돌이 약장수의 차력사범으로 전전하다가 생활고로 아내마저 가출한다. 남창으로까지 전락한 일봉은 어느날 밤 갑자기 온몸이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고향에서의 그 황소같던 힘도 이제는 더 이상 솟아나지 않고 남은 것은 오로지 무참히 좌절된 희망, 부서질 대로 부서진 몸뿐이다.
그제서야 일봉은 자신이 이 도시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는 그 옛날의 장사 차일봉으로 되 솟아오르기 위해 다시 세상을 나선다.
이 무대는 공연예술이 갖추고 있는 양식 중에서 「관객과 직접 만난다」는 사실에 가장 치중한 듯이 보인다. 관객들과 어색하지 않게 대사를 주고받거나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에 관객들이 합세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분위기가 고유의 마당극 형식임을 입증한다.
그러나 마당극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일방적인 주장등 거친 면보다 기왕의 현실비판 기능을 갖고 있되 예술지향 성향으로 잘 소화해내고 있다. 특히 장사역의 조항용과 그의 역정에서 만나는 10여명의 인물을 혼자서 소화해내는 김명곤의 연기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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