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이쑥] 서울대 논술고사 분석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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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순 유레카논술 대표강사

2006학년도 서울대 논술고사의 가장 큰 특징은 7개에 이르는 제시문의 숫자이다. 여기에 사례로 나온 것을 포함하면 제시문이 무려 10개에 이른다. 어려운 7개를 전반적으로 활용하는 과제가 학생들에게 상당한 당혹감과 부담을 안겨주었다. 주제 자체는 낯선 것이 아니었다. 논제는 각각의 사례에 나타난 "경쟁의 성격을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쟁의 공정성과 경쟁 결과의 정당성에 대해 논술"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7개의 제시문을 참고하라는 요구도 있다.

사례 A, B, C는 각각 완전경쟁에서의 불공정 상황, 규칙을 통한 경쟁 규제, 사회적 약자의 직접 보호를 통한 경쟁 제한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어려운 것은 "경쟁의 공정성과 경쟁 결과의 정당성"에 대한 요구였다.

◆ 출제 의도에 맞게 접근하려면=보통 학생들은 '경쟁'과 같이 익숙한 주제가 나오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중심으로 '창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글은 당연히 제시문의 문제의식으로부터 벗어나 뻔한 내용이 되기 십상이다. 예를 들어 막연하게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 식으로 구분해 놓고 서술하는 경우인데, 일종의 수필이 되어버린다.

제시문 각각의 문제의식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논의에 반영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러한 경우 각 제시문의 핵심 내용을 간결하게 압축하여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출제 의도를 반영하면서 수월하게 풀어나가는 지름길이다. 각 제시문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①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공유지는 황폐해지게 마련이다. ②인간의 본성에는 연민과 동정의 원리가 존재한다. ③경쟁이 독점보다 언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④편의에 의한 자유와 간섭 사이의 선택은 자유를 점진적으로 파괴한다. ⑤다수의 이득을 위해 소수에게 강요되는 희생은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⑥국가는 경쟁이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경쟁을 보호해야 한다. ⑦경쟁이 이제 수단의 의미를 넘어 범세계적인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러한 각각의 입장을 활용하여 ▶자유와 경쟁의 의미 ▶어떠한 경우에 경쟁의 제한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어떤 규칙이 필요한가 ▶경쟁의 결과가 정당성을 획득하려면 어떠한 조건이 필요한가 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해야 한다.

16일 오후 서울대 인문계열에 지원한 수험생들이 서울대 인문대 강의실에서 논술고사를 보고 있다.오종택 기자

◆ 서울대 논술 대비 방안=핵심은 정확한 제시문 이해능력이다. 특히 서울대 2008년 논술 예시문항에서도 여러 개의 제시문을 출제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각각의 내용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당연히 이는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움켜쥘 수 있는 내용 파악 능력에 좌우된다.

서울대는 계속 교과서와 연계하여 풍부하게 동서양 고전을 습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정시 문제나 2008 예시문항 모두 마찬가지 경우이다. 사회나 국어교과서의 주제와 연계해 관련 고전을 꾸준히 읽고 토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특히 내용의 소화를 위해서는 토론을 통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는 단기간 대응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초.중.고 전 과정에 걸쳐 습득해야 한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2500자 논술을 하기 위해서는 끈질긴 사고력이 중요하다. 서론에서 본론, 결론에 이르기까지 한순간도 쟁점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승부를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단편적인 배경지식이 아니라 각각의 주제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는 공부가 중요하다.

박홍순 유레카논술 대표강사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 2006학년도 서울대 논술문제

사례 A,B,C는 경쟁의 양상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설명하고 경쟁의 공정성과 경쟁 결과의 정당성에 대해 논술하시오. 제시문 1~7을 참고할 것(2500자 3시간).

<사례 a> 고슴도치와 토끼가 달리기 시합을 했다. 고슴도치는 몰래 자신과 닮은 아내를 결승점에 먼저 보냈다. 토끼가 도착하자 고슴도치 아내가 "나는 벌써 와 있다"고 말했다.

<사례 b> 초등학교 축구 팀 11명과 아마추어 성인 축구팀 6명이 축구 경기를 했다. 성인팀은 상대 선수에게 태클할 수 없도록 했다.

<사례 c> 주인이 새끼고양이 형제들 사이에서 유난히 작고 허약한 걸 특별히 돌보고 사랑했다.

<제시문 1> 어떤 마을에 누구나 가축을 방목할 수 있도록 개방돼 있는 공동의 땅이 있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이 공동의 땅에 자신의 가축을 가능한 한 많이 풀어 놓으려 했다. <중략> 각 농가에서는 공유지에 풀이 충분한가 걱정하기보다 방목하는 가축 수를 늘리는 일에만 골몰하였다. 공유지가 가축으로 붐비게 됐고, 그 결과 황량한 땅으로 변하고 말았다. (개릿 하딘, ''공유의 비극')

<제시문 2>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 연민(煉憫)과 동정(同情)의 원리가 존재한다. 이 원리들로 인해 우리는 인간의 운명에 관심을 갖게 되며 자기에게는 별 이익이 없어도 타인이 행복하기를 바란다.(이하 생략)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제시문 3> 자본주의의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전통적 형태의 경쟁이 아니라 신상품.신기술.신공급원.신조직형태 등과 관련한 경쟁이다. <중략>

어떤 사업자가 자기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는 경우에, 외부에서는 경쟁압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는 늘 경쟁 상태에 있다고 느낀다. <중략>이러한 관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적인 혁신자가 차지하는 독점이윤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조지프 A 슘페터,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

<제시문 4>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회적 또는 분배적 정의라고 간주되는 것은 인위적인 질서에서만 의미를 가질 뿐이지, 자생적인 질서 속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다.<중략> 자유를 제한해 야기되는 손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법, 입법, 그리고 자유')

<제시문 5> 사상 체계의 제1 덕목을 진리라고 한다면 정의(正義)는 사회 제도의 제1 덕목이다. <중략>그보다 나은 이론이 없을 경우에만 결함 있는 이론이나마 따르게 되듯이 부정의(不正義)는 그보다 큰 부정의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참을 수 있다. 인간 생활의 제1 덕목으로서 진리와 정의는 지극히 준엄한 것이다. (존 롤스, '사회정의론')

<제시문 6> 경제가 시장기능에만 의존하면 시장이 붕괴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는 경쟁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중략> 국가는 경쟁이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경쟁을 보호할 임무가 있다. 국가는 경쟁의 원칙을 세우고 이를 관철시켜야 하며, 기업은 이러한 틀 안에서 경쟁을 통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오토 슐레히트, '사회적 시장경제')

<제시문 7> '경쟁'이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함께 추구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중략> 인간의 욕구 수준을 계속 높여감으로써 새로운 진보와 창조를 가능케 한 것이다. 정치적 측면에서도 경쟁 심리는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적인 동인(動因)이었다.<중략> 경쟁에서 상대방을 이기면 된다는 간단한 논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경쟁이란 곧 상대의 이익을 빼앗는 과정이다. (리스본 그룹, '경쟁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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