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택희의 맛따라기] 최고 메밀국수 꿈이 익어간다…신생 명가 ’고기리 장원막국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기리 장원막국수’ 집 비빔막국수의 도도한 자태. 메밀 녹쌀로 제분한 100% 메밀가루에 물만 넣고 반죽해 바로 뽑은 국수의 상아색 살결이 눈부시다. 순 메밀면이지만 찰랑찰랑 찰기가 있다.

‘고기리 장원막국수’ 집 비빔막국수의 도도한 자태. 메밀 녹쌀로 제분한 100% 메밀가루에 물만 넣고 반죽해 바로 뽑은 국수의 상아색 살결이 눈부시다. 순 메밀면이지만 찰랑찰랑 찰기가 있다.

이 집을 소개하는 건 조심스럽다. 주인에게나 독자에게나 민폐가 될 수도 있다. 대기손님 줄이 이미 길다. 여름 성수기에는 두 시간을 기다리는 일도 있다. 겨울에도 주말이면 30분 기다릴 각오는 하고 가야 한다. 도착하면 먼저 대기자 명단에 이름부터 적는 게 좋다. 아무리 단골이라도 안면몰수, 장부에 적힌 순서대로 모신다. 일행이 다 도착하기 전에는 입장이 안 된다. 게다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분당 미금역에서 6km) 골짜기까지 찾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기사를 쓰는 이유는 메밀국수에 있다. 메밀 맛의 원점을 알아보고 싶은 사람, 메밀 향의 정체가 궁금한 사람, 메밀국수 맛의 기준을 설정하고 싶은 사람은 가서 먹어보길 권한다. 거기 장인(匠人)의 경건함으로 메밀국수를 빚는 주방장이 있다. 냉면보다 정갈하고 맵시 있게 정성을 다한 막국수가 있다.

주인 부부의 운영 신조는 수행자 규칙 같다. “우리가 최선을 다한 막국수를 손님이 먹을 때 최상의 맛을 즐기도록 하겠다. 기다리던 손님이 지쳐 돌아가도 원칙을 지키며 제대로 만들어서 상에 내겠다. 스스로 추구하는 막국수 맛은 반드시 지키겠다. 돈 버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게 국수 맛 흔들리지 않고 지켜내는 것이다. 손님이 기다린 시간에 대해서는 맛으로 보답하겠다.”

반죽기의 메밀가루에 물을 붓고 있는 ‘고기리 장원막국수’ 주인 유수창 셰프. 반죽은 오롯이 100% 메밀가루와 지하수만으로 한다. 뒤 가마에는 물이 끓고 있다.

반죽기의 메밀가루에 물을 붓고 있는 ‘고기리 장원막국수’ 주인 유수창 셰프. 반죽은 오롯이 100% 메밀가루와 지하수만으로 한다. 뒤쪽 가마에는 물이 끓고 있다.

2012년 5월 개업해 5년도 안 된 신생 음식점이지만 이미 명가(名家) 반열에 오른 ‘고기리 장원막국수’(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이종무로 119 고기리 계곡 입구/전화 031-263-1107) 얘기다. “막국수를 미치도록 좋아한다”는 유수창(45)·김윤정(42)씨 부부가 운영한다. 이름이 같은 ‘장원막국수’가 전국에 5~6곳 있지만 ‘고기리 장원막국수’에 가야 한다. 메뉴는 막국수(물·비빔·들기름/면 300g 각 7000원)와 수육(170g 1만2000원)·녹두전(9000원) 세 가지뿐이다. 막국수에 집중하기 위해 극도로 절제한 편성이다. 술은 막걸리를 팔지만 2인 1병으로 제한한다.
 지난 일요일(15일) 바쁜 시간을 피해서 간다고 오후 1시30분에 도착했다. 마당의 게르(몽골 텐트가옥) 같은 천막 안에는 대기손님이 가득했다. 식사와 취재를 마치고 나온 4시30분에도 사람은 줄지 않았다. 마당을 서성이기도 하며 기다리는 사람들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11시30분에 문을 열어 마지막 주문을 받는 오후 8시30분까지 주말에는 풍경이 늘 이렇다. 어떤 막국수이기에 기다림의 불편함을 그렇게 감수하는 걸까.

자리에 앉으면 상에는 젓가락통밖에 없다. 어떤 양념도 비치하지 않았다. ‘우리 집 음식에 자신이 있으니 내주는 대로 드시라’는 주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직원이 바로 면수(메밀국수 삶은 물) 주전자와 컵을 들고 와 주문을 받는다. 간기 없는 순수 메밀 물이다. 벽에는 “오늘 드시는 국수는 2016년산 햇메밀로 만듭니다”라는 글이 붙어있다.

막국수 3종을 주문했다. 들기름막국수가 먼저 나왔다. 반찬은 열무얼갈이김치 하나다. 직접 짠 들기름과 간장으로 비벼 그릇에 담고, 당일 빻은 참깨가루와 가미 않고 구운 김가루를 뿌렸다. 직원은 “비벼서 나왔으니 비비지 말고 그대로 드세요”라고 먹는 방법을 설명한다. 비비면 김가루가 눅눅해져 향이 제대로 안 나니까 비비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입안 가득 국수를 물고 우물거리면 처음엔 들기름·참깨가루의 고소함이 물씬 끼치면서 색채가 다른 김 향이 진한 추임새를 넣는다. 좀 지루하다 싶도록 국수를 꼭꼭 씹으면 고소함보다는 메밀 면의 아릿한 듯 구수한 향이 비강(鼻腔)을 채운다. 좌선하는 수도승의 엷은 미소 같은 맛이다. 반쯤 먹다가 냉육수를 부어 먹으면 새로운 맛이 입에 감긴다. 메밀국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조리이자 먹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기름막국수 대접에는 참깨와 김 가루 아래 간장과 들기름으로 비빈 100% 메밀국수가 도사리고 있다. 반찬은 열무얼갈이김치뿐이다.

들기름막국수 대접에는 참깨와 김 가루 아래 간장과 들기름으로 비빈 100% 메밀국수가 도사리고 있다. 반찬은 열무얼갈이김치뿐이다.

들기름막국수는 비벼서 나오므로 비비지 말고 그대로 몇 가닥씩 뽑아 먹어야 깨·김의 향과 막국수 제 맛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들기름막국수는 비벼서 나오므로 비비지 말고 그대로 몇 가닥씩 뽑아 먹어야 깨·김의 향과 막국수 제 맛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들기름막국수를 반쯤 먹다가 냉육수를 부어 먹으면 색다른 맛이 입에 감긴다.

들기름막국수를 반쯤 먹다가 냉육수를 부어 먹으면 색다른 맛이 입에 감긴다.

다른 곳에서 맛보기 힘든 들기름막국수는 주인 부부의 예민하고 독특한 입맛 때문에 탄생했다. 막국수 좋아하는 부부는 2001년 결혼 후 틈만 나면 동해안으로 막국수 여행을 했다. 강원도에서 유명하다는 막국수 집은 안 가본 데가 없다 할 정도로 다녔다. 그때마다 메밀국수는 좋은데 비빔양념이 국수 맛을 해치는 조합이 아쉬웠다. 양념 넣지 말고 들기름과 간장을 달라고 해서 비며 먹으니 맛이 더 좋았다. 메밀국수 맛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메뉴다.

물막국수는 고명이 먼저 눈길을 끈다. 무 절임, 지단과 오이 채, 저민 배가 국수 사리 위에 차례로 올라앉아 있다. 특히 자 대고 재단한 듯한 지단과 오이 채가 음식 만든 사람의 긴장과 정성을 대변하는 듯했다. 국수 3종에 두루 쓰는 이 채에는 실제로 특별한 공을 들인다. 지단은 기포나 멍울이 생기지 않도록 계란을 오래 젓고 올이 촘촘한 체에 몇 번을 걸러서 부친다. 그걸 식히며 무거운 물건으로 눌러 단단히 굳힌다. 그래야 자르는 선이 곱게 나온다고 한다. 그 과정을 거친 지단은 씹는 느낌이 질깃하다. 오이는 속을 파내고 껍질은 벗겨서 얇고 네모 반듯하게 채 친다. 칼이 지나간 단면의 예리한 각이 눈에 보인다. 왜 거기에 그토록 공을 들일까. 안주인 김씨는 “고명은 조리의 마무리이지만 음식으로는 첫 인상이다. 미각보다 시각을 일깨워야 한다. 사람은 먹기 전에 보면서 식욕중추가 작동한다. 시각적으로 깔끔하면서 입맛을 돋우도록 정성을 다한다”라고 설명했다. 막국수 한 그릇을 말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과 노력을 담았는지 엿보이는 대목이다.

배는 한 쪽이지만 설탕에 절인 듯 달다. 골패썰기 한 무 절임은 석 장을 올렸는데 신맛·단맛이 아슴아슴하다. 투명에 가깝게 맑고 옅은 갈색의 육수는 아련한 고기 맛에 전체적으로 명징(明澄)한 국물이다. 소 목뼈에 몇 가지 채소와 다시마 넣고 뽑았다. 목뼈는 사골과 달리 고기가 조금 붙어있다. 살코기를 따로 넣지 않아도 고기 맛이 나오고 뼈 국물 맛도 함께 낼 수 있다. 주인은 맑은 맛을 추구하기 때문에 맛이 진하고 탁한 국물이 나오는 사골은 쓰지 않는다. 목뼈도 10여 시간씩 오래 끓이는 게 아니라 6~7시간만 곤다. 간은 하다 만 듯 심심하다. 한 그릇에 들어간 재료들은 있는 듯 없는 듯, 메밀의 원 맛을 느끼는 데 어떤 방해도 하지 않도록 치밀한 계산 아래 배치한 것이다. 그래서 상에 겨자·식초를 놓지 않았다.

메밀국수의 맛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다른 재료의 작용을 최소화한 물막국수. 섬세하게 자른 지단과 오이 채 고명 몇 가닥에도 많은 생각과 노력이 들어있다.

메밀국수의 맛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다른 재료의 작용을 최소화한 물막국수. 섬세하게 자른 지단과 오이 채 고명 몇 가닥에도 많은 생각과 노력이 들어있다.

물막국수 사리를 육수에 풀어 본 모습. 겉껍질 벗긴 메밀 녹쌀만 즉석에서 갈아 물만 넣고 반죽해 바로 뽑은 100% 메밀면의 자태다.

물막국수 사리를 육수에 풀어 본 모습. 겉껍질 벗긴 메밀 녹쌀만 즉석에서 갈아 물만 넣고 반죽해 바로 뽑은 100% 메밀면의 자태다.

창이 넓은 기와집 실내 식탁에 햇살이 간접광으로 비치니 국수 자태가 우아하다. 매끈한 살결의 눈부시게 맑은 상아색이 입맛을 자극했다. 국수를 찬물에 헹궈 건질 때 1인분씩 손에 감아 물기를 꼭 짠다. 물기가 많으면 정밀하게 계산된 막국수 맛의 균형이 깨질까 봐 그런다. 그 과정을 거친 막국수 사리는 아주 단단히 감겨 그릇에서 젓가락으로 흔들어도 얼른 풀리지 않을 정도다.

100% 메밀가루와 물만으로 반죽해 뽑았다는데 국수가 의외로 졸깃하다. 익반죽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음식점이 들어앉은 광교산 자락의 지하수만 붓고 반죽한다. 내 눈으로 확인했다. 도정한 지 일주일이 넘지 않은 햇메밀 녹쌀(갈아서 겉껍질을 벗기고 쌀알처럼 만든)만 쓰고, 하루에도 몇 번 조금씩 곱게 빻아 바로 국수를 뽑는 덕분에 메밀이지만 어느 정도 찰기가 있다. 제분은 전기절구로 한다. 한번에 30~50인분만 빻는다. 너무 많이 빻아 두면 메밀 향이 날아가고, 기계가 뜨거워져 온도에 민감한 메밀의 맛이 변한다. 바로 빻은 메밀가루에 물만 넣고 기계를 돌려 반죽한다.

비법을 묻자 유씨는 “요인이 너무 많다. 메밀가루의 상태, 반죽 물 온도, 물의 종류(수돗물·지하수), 날씨(온·습도), 반죽 시간과 농도, 삶는 시간, 헹구는 물 온도 등에 다 영향을 받는다. 중요한 건 좋은 메밀의 가루와 반죽을 손으로 만져 최적상태를 잡아내는 감(感)이다. 지난 5년간 그걸 갈고 닦았다”고 말했다.

이 경지에 오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개업 초기 어느 날엔 하루 한 그릇 팔고 집에 간 날도 있었다. 국수가 뜻대로 나오지 않았다. 개업하고 1년 가까이 음식이 마음에 안 들어 비빔막국수를 입에도 안 댔다. 반년쯤 지난 2012년 11월쯤 되니까 스스로 ‘조금 먹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맛이 안정된 2013년 방송에 두 번 나가면서 서서히 알려져 손님이 늘었다. 손님이 많아지니까 음식 맛도 달라졌다. 하루 100만원 팔 때와 500만원, 700만원 팔 때 음식은 달랐다. 손님이 늘면서 맛이 빠르게 좋아졌다. 가장 많이 판 날은 7000원짜리 막국수를 팔아 하루 800만원이 훌쩍 넘는 매상을 올렸다. 막국수 값은 개업 이래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많이 팔아 상쇄한 덕에 값을 안 올리고도 견딜 수 있었다. 가까운 분당의 장원막국수는 9000원이다.

‘고기리 장원막국수’의 국수 3종 가운데 가장 많이 나간다는 비빔막국수. 양념장을 바닥의 육수에 개서 비벼야 잘 비벼진다.

‘고기리 장원막국수’의 국수 3종 가운데 가장 많이 나간다는 비빔막국수. 양념장을 바닥의 육수에 개서 비벼야 잘 비벼진다.

잘 비벼진 비빔막국수 가닥들 사이에 보이는 양념 알갱이들은 여러 가지 과일과 채소인 듯하다.

잘 비벼진 비빔막국수 가닥들 사이에 보이는 양념 알갱이들은 여러 가지 과일과 채소인 듯하다.

비빔막국수는 이 집에서 가장 많이 나가는 음식이다. 음식을 들고 온 직원은 손님에게 꼭 안내를 한다. 위에 올린 양념장을 그릇 바닥에 굴려 자작하게 부어둔 육수에 개고 면 사리를 뒤집어서 풀어가며 비비라고. 제법 점도가 있는 비빔양념은 육수에 개지 않고 바로 비비면 잘 안 풀어져 국수와 쉬 섞이지 않는다. 비빔양념의 원적은 강원도 홍천 ‘장원막국수’다. 상당한 액수의 돈을 내고 4~5개월 주방실습을 하면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양념 등 몇 가지를 정한 대로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같은 상호를 쓰기로 했다. 재료의 조달이나 운영은 독자적으로 한다. 분점 개념이 아니라 상호만 같은 별개 음식점이라는 뜻이다. 비빔양념은 태양초·마늘·생강·양파·배 등을 갈아 넣어 1주일 정도 숙성해서 쓴다. 원조보다 단맛을 상당히 낮췄다는데 내 입에는 달았다. 좋은 메밀로 뽑은 국수의 참 맛을 즐기기에 적합한 메뉴는 아닌 듯했다(내 기호 탓이 크다).

단맛을 줄이면 원조 집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유씨는 “같은 양의 양념을 섞어도 맛은 얼마든지 다르게 낼 수 있다. 양념의 주원료인 고춧가루 하나만 해도 천차만별이다. 재료에 따라 맛과 품질은 천변만화 한다. 홍천에서 배웠지만 음식은 끊임없이 바뀐다. 개업 이후 5년간 100가지도 더 바뀌었을 것이다. 이제는 처음 음식과 맛·모양·느낌이 완전히 달라졌다. 좋아하는 말이 있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라는 광고 구호다. 내가 만든 국수를 매일 한 그릇씩 먹으면서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한다”라고 답했다. 실제 메밀국수 마니아들 사이에는 “홍천 원조보다 낫다”거나 “고기리가 장원막국수 원조냐”는 말이 돌기도 한다.

수육은 제주산 돼지고기 사태를 1시간쯤 삶아 바로 잘라서 낸다. 당일 삶은 고기는 당일에만 쓴다. 새우젓은 광천 추젓을 바꾸지 계속 쓰고 있다.

수육은 제주산 돼지고기 사태를 1시간쯤 삶아 바로 잘라서 낸다. 당일 삶은 고기는 당일에만 쓴다. 새우젓은 광천 추젓을 바꾸지 않고 계속 쓰고 있다.

수육은 제주산 돼지고기 사태 최고급품을 쓴다. 대개 테이블마다 수육(또는 녹두전) 한 접시와 1인당 막국수 한 그릇을 시킨다. 3명이면 3만~3만3000원. 실제로 평균 객단가는 1만1000원이다. 수육은 미리 삶아 놓지 않는다. 생강·계피·감초 등을 넣은 육수에 1시간쯤 삶아 바로 썰어서 상에 낸다. 손님이 끊임없이 오기 때문에 가능하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촉촉한 돼지고기는 쫄깃하면서 고소한 육미(肉味)가 진하다. 그날 삶은 건 버리더라도 다음날 쓰는 일이 없다. 안주인 김씨는 “초기 며칠은 고기가 아까워 남으면 다음날 썼는데 문득 우리 집 좋다고 일찍 온 분들에게 하루 전 음식을 내는 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라고 사연을 말했다.

170g 작은 접시를 시키면 실제 200g쯤 담긴다고 한다. 새우젓은 국산 광천 추젓 소포장을 사다 쓴다. 산지를 알 수 없는 큰 포장으로 사서 쓰는 것보다 돈이 훨씬 더 들지만 믿을 만한 재료로 많이 팔면 되니까 좋은 걸로 골라 쓴다는 계산이다. 된장은 전통된장에 몇 가지 재료를 섞어 염도를 낮췄다. 청양고추는 아주 매운 걸 쓰되 가늘게 썰어 입맛에 따라 양을 조절해 먹을 수 있게 했다. 손님을 위한 세심한 배려다.

녹두전을 부치기 위해 돼지비계에서 기름을 뽑고 있다.

녹두전을 부치기 위해 돼지비계에서 기름을 뽑고 있다.

녹두전은 껍질이 붙어있는 국산 녹두를 전날 불리고 거피해뒀다가 당일 갈아서 부친다.

녹두전은 껍질이 붙어있는 국산 녹두를 전날 불리고 거피해뒀다가 당일 갈아서 부친다.

그날 내가 먹지 못한 녹두전은 한정수량만 팔기 때문에 늦게 가면 떨어지고 없다. 껍질이 있는 국산 녹두를 하루 전에 불려 거피해뒀다가 아침에 전동맷돌로 갈아 돼지비계 기름 뽑아서 즉석에서 부친다. 배추김치를 쓰는 게 아니라 절여 숙성한 배추와 돼지고기를 잘게 다져 넣고 부친다.

햇메밀의 겉 껍질만 벗긴 녹쌀.

햇메밀의 겉 껍질만 벗긴 녹쌀.

벽에 붙어있는 햇메밀 안내문. 메밀 품질이 이 집의 큰 자랑이다.

벽에 붙어있는 햇메밀 안내문. 메밀 품질이 이 집의 큰 자랑이다.

주인 유수창씨는 명문대 경제학과 출신(91학번)이다. 재학 중 일본에 어학연수를 갔다가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일본의 음식문화였다. 음식에 쏟는 섬세한 정성과 장인정신, 요리의 현란한 맛과 차림새, 몸에 밴 친절과 손님에게 베푸는 세심한 배려, 그들에 대한 사회적 대우, 이런 것들은 주방을 ‘인생 막장’으로 여기던 당시 국내 사정에 비해 부럽고 충격이었다. 어릴 때 미식가 아버지를 따라 보통 어린이들은 가기 힘든 고급음식점에 많이 다녀 관심이 있던 일이라 외식업을 하기로 인생 행로를 바꿨다.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가 도쿄 센슈(專修)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외식업 전공) 학위를 받았다. 귀국해 이자카야에 취직해 홀 매니저로 3년간 현장실습을 한 뒤 결혼하던 2001년에 압구정동에 이자카야 ‘니와’를 창업해 10년간 운영했다. 그리고 2012년 5월 부부가 좋아하는 막국수 집으로 전업했다.

반죽기가 돌아가면서 물과 섞인 메밀가루가 뭉쳐지고 있다.

반죽기가 돌아가면서 물과 섞인 메밀가루가 뭉쳐지고 있다.

반죽이 적당히 되면 제면기 압출 실린더 크기에 맞게 원통형으로 반죽을 뽑아 적당한 길이로 자른 다음 비닐봉지에 싸서 쌓아두고 국수를 뽑는다. 다른 음식 주방과 분리된 냉면 주방은 제분기(왼쪽 아래 연두색), 반죽기, 제면기와 국수 가마, 삶은 국수 헹구는 개수대 두 개, 막국수 대접 거치대, 양념과 고명 얹는 조리대(시계반대 방향)가 4면 벽을 따라 꼬리를 물고 있다.

반죽이 적당히 되면 제면기 압출 실린더 크기에 맞게 원통형으로 반죽을 뽑아 적당한 길이로 자른 다음 비닐봉지에 싸서 쌓아두고 국수를 뽑는다. 다른 음식 주방과 분리된 냉면 주방은 제분기(왼쪽 아래 연두색), 반죽기, 제면기와 국수 가마, 삶은 국수 헹구는 개수대 두 개, 막국수 대접 거치대, 양념과 고명 얹는 조리대(시계반대 방향)가 4면 벽을 따라 꼬리를 물고 있다.

제면기 앞에서 국수로 뽑히기를 기다리고 있는 메밀가루 반죽 덩이들. 1덩이로 대략 7인분을 뽑는다.

제면기 앞에서 국수로 뽑히기를 기다리고 있는 메밀가루 반죽 덩이들. 1덩이로 대략 7인분을 뽑는다.

제면기에서 압출된 메밀국수가 끓는 물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 휴일 손님이 계속 밀려와 면 삶은 물이 사골 국처럼 뽀얗다.

제면기에서 압출된 메밀국수가 끓는 물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 휴일 손님이 계속 밀려와 면 삶은 물이 사골 국처럼 뽀얗다.

끓는 물 속으로 떨어진 메밀국수가 익으면 천천히 떠오른다. 눈으로 살피고 막대로 저어가며 건질 시간을 보고 있다. 타이머 장치도 했는지 간간이 알람 소리도 들렸다.

끓는 물 속으로 떨어진 메밀국수가 익으면 천천히 떠오른다. 눈으로 살피고 막대로 저어가며 건질 시간을 보고 있다. 타이머 장치도 했는지 간간이 알람 소리도 들렸다.

삶아서 헹군 메밀국수를 사리는 유수창 셰프. 그릇마다 하나씩 사려 물기를 손으로 짜서 담는다. 물기를 덜 짜면 정밀하게 계산한 부재료와의 조합이 어긋나 맛의 균형이 흐트러질 수 있다.

삶아서 헹군 메밀국수를 사리는 유수창 셰프. 그릇마다 하나씩 사려 물기를 손으로 짜서 담는다. 물기를 덜 짜면 정밀하게 계산한 부재료와의 조합이 어긋나 맛의 균형이 흐트러질 수 있다.

아내는 친구의 여동생이다. 장모는 딸이 안정된 가정에서 편안히 살기를 바랐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사위가 외식업을 한다니, 더구나 도심에서 먼 골짜기 외진 곳에서 판을 벌리니 걱정이 많았다. 정치인이던 장인도 마뜩잖은 표정이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형제나 사촌들이 공부로는 전국 순위를 다툴 정도로 잘 나갔는데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아들이 음식 장사를 한다고 하니 말리지는 않았지만 난감해 했다. 이제는 양가 모두 가장 자랑스러운 자식으로 여기고 전폭적 지지와 성원을 보낸다.

유씨는 몸이 아주 민감해 조금만 이상한 걸 먹어도 바로 화장실을 찾는다.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음식에 이상한 재료 쓰지 못하고 음식을 타성적으로 만들지도 못한다. 2016년 한 해 20t을 쓴 메밀은 40kg 한 가마니가 보통 17만~18만원에 거래되는데 유씨는 20만원짜리를 썼다. 캐나다 국경지대서 재배한 미국산과 내몽골 지역 중국산을 반반 쓴다. 미국산은 성질이 남성적이고 중국산은 얌전하다. 메밀은 파종기인 3월이 지나가면 맛이 급격히 떨어진다(곡물은 파종기를 넘기면 대개 그렇다). 전문가에 따르면 온도·습도 잘 맞추면 5년은 맛이 유지된다고 한다. 그 온도가 섭씨 5도다. ‘고기리 장원막국수’는 5도 저온창고를 따로 마련해 메밀을 저장하고 있다.

기와지붕을 얹은 ‘고기리 장원막국수’. 안에는 세 칸의 방에 4인 테이블 12개가 놓여 있고 왼쪽으로 주방이 있다. 마당 천막 안에는 대기 손님들이 앉아있다. 땅이 용인시 소유의 도로예정 부지여서 공사를 시작하면 음식점을 이전해야 한다.

기와지붕을 얹은 ‘고기리 장원막국수’. 안에는 세 칸의 방에 4인 테이블 12개가 놓여 있고 왼쪽으로 주방이 있다. 마당 천막 안에는 대기 손님들이 앉아있다. 땅이 용인시 소유의 도로예정 부지여서 공사를 시작하면 음식점을 이전해야 한다.

그는 메밀국수 맛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국내에서 메밀을 계약재배해 전량 수매하고, 최적의 저장시설 만들어 비축해두고 필요한 만큼씩 도정해 가능한 짧은 시간 안에 제분하고 바로 국수를 뽑는 것이다. 5년 뒤 실현을 목표로 시험재배에 들어갔다. 유씨는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 최고의 메밀국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돈 많이 버는 것보다 유명한 집 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야 막국수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시장의 규모가 커진다. 그런 음식점을 만들어 딸에게 물려주고(딸만 둘이다) 손주들이 대물림하는 모습까지 보려고 한다”고 소박하지만 야무진 구상을 밝혔다.

그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아내 김씨는 말했다. “음식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건 우리 부부의 생각들이다. 음식에 대한 생각, 재료에 대한 사유다.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국수를 만드는 것, 국수 한 그릇에 나와 가족과 우리 이야기를 담는 것, 이것이 국숫집을 하는 이유다. 우리는 다른 누구를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경쟁 상대는 우리 자신일 뿐이다.”

매주 화요일 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