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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인권위 권고안 성토" 재계 성명 주도한 이수영 경총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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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만난 사람 = 김동섭 산업데스크

연초부터 재계가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국가 인권정책 기본계획(NAP) 권고안에 대해 경제 5단체장이 한자리에 모여 이를 성토하고 나선 것이다. 재계의 노사관계 창구인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가 경제계의 인권위 비판을 주도했다. 경총 회장을 맡은 지 만 2년이 된 이수영 회장을 만나 재계의 소리를 들어봤다. 이 회장은 "재계가 제 목소리를 냈다고들 하니 부담스럽다"며 말문을 열었다. 인터뷰는 20일 서울 중구 소공동 동양제철화학 본사 회장실에서 진행됐다.

-지난주 경제 5단체가 인권위의 인권정책 권고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강하게 표명했습니다. 성명서 분량도 무려 A4용지로 6쪽이나 될 정도로 많더군요. 왜 그렇게 반발하시는지요.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은 정부가 유엔에 하는 국가 차원의 약속입니다. 사회적 타당성과 이행 가능성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일부의 주장만을 반영해 균형 감각이 결여되고 실현 가능성도 매우 낮은 권고안을 발표했습니다. 안보와 사회질서의 근간이 무너지면 결국 인권의 존립 기반 자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재계가 '인권'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부 있습니다. 인권위가 사회적 소수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많이 한 것도 사실입니다. 재계도 소수자의 인권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지금 우리의 경제.사회 환경 속에서 인권 신장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일자리 만들기입니다. 일자리를 가진 근로자들의 인권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밖에 있는 실업자들의 일자리와 생존권 보장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추상적인 인권 신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기업들의 세계적 경쟁력 확보가 곧 경제성장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들도 투명하고 창의적인 기업가정신으로 재무장하고, 지속적인 투자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중소기업 근로자의 처우 개선에 의한 양극화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양극화가 올해 최대 화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신년 연설에서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실제 어떻게 느끼십니까.

"대통령께서 솔직하게 문제를 잘 짚어주셨습니다. 상위 10대 기업의 수출액이 50%에 육박하며, 이들 기업이 경제성장에 기여한 몫이 40%를 웃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근로자 1000명 이상의 대기업이 잘 버텨줘서 이 나라가 먹고 사는 것 아닙니까. 기업 수익성의 양극화가 근로자 소득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인 셈입니다. 중국 경제의 급부상이 가져온 구조적 현상입니다. 현재 반도체.자동차.LCD 등 중국보다 기술 우위에 있는 산업들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80% 이상이 근무하고 있는 의류.섬유.일반기계 등 중소.영세기업들은 중국의 저가공세로 뿌리가 뽑힐 지경입니다."

-양극화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노 대통령은 신년 연설에서 양극화 해소를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그 해법으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는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사회안전망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정부 재정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은 경쟁에서 밀린 서민과 저임금 근로자가 다시 경쟁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는 데 그쳐야 합니다. 잘못해서 사회 전체가 하향 평준화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일자리다운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의 주체인 기업이 투자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IT.BT 등 신산업 분야를 제외하고 기존의 전통산업들은 이렇다할 수익모델을 찾지 못해 투자 마인드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습니다. 소득을 높이려면 외국인 투자가 많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러나 외국 투자가들은 노조가 너무 전투적이고 합리적인 대화가 안 된다며 발걸음을 돌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사관계와 임금 안정이 필요합니다. 노동계는 임금 인상 투쟁보다는 생산성과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동운동을 전환해야 합니다. 특히 그간 생산성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아왔던 고임 대기업의 임금은 동결하고, 그 재원으로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신규 인력을 더 채용하는 데 활용해야 합니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도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를 염두에 두고 논의돼야 합니다. 기업의 현실은 무시하고 법으로 강제하여 비정규직의 처우를 높이고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강요한다면, 기업은 자동화 설비를 늘리는 방법으로 비정규직도 안 쓰는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부디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비정규직 일자리 축소 법안'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은 무엇보다 대기업 노조의 양보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지요. 재계도 때로는 과감하게 양보해서 노사 간 대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재계도 길게 봐야 합니다. 근로자들이 정서적으로 마음이 편해지고 '우리 회사는 아들.손자까지 다닐 수 있는 좋은 기업이구나' 하는 믿음을 줘야 합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기업을 투명해야 경영해야 합니다. 재계와 기업인도 (노조가 보기에) 교훈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발상은 모두를 어렵게 하자는 것입니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이 물러났습니다. '법과 원칙을 지키는 장관'이라는 평가도 많았는데,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김 전 장관에 대해) 무척 서운했는데, 지금은 많이 생각납니다. 노동계의 무리한 요구도 들어주지 않으셨지만 그렇다고 재계의 부탁도 잘 들어주시지 않았거든요. 법 테두리 안에서 법을 엄정히 집행할 뿐, 정부는 노사 자율의 원칙을 지켜주는 3자라는 생각을 견지하셨죠. '그 철학이 좋은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요즘 합니다. 신임 이상수 장관 내정자도 균형감각이 있으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2004년 7월 본지 인터뷰에서 "향후 2~3년간 산업현장에 노사 갈등으로부터의 '휴가'를 주자"고 하셨는데, 지난 2년간 노사 모두 휴가를 즐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난해 노사분규 발생 건수는 많이 감소했지만, 노사관계가 안정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노동계의 불법 과격 투쟁이 연중 계속됐기 때문에 체감하는 불안 정도는 여전했던 것 같습니다. 기대를 가지고 추진했던 노사정 대화도 아쉽게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노동계와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고는 싶은데, 노동계가 너무 바빠요. 대통령 말씀대로 사회적 합의를 하려고 해도 그분들이 바빠서 약속시간 잡기가 어려울 정도예요."

-올해 노사관계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노사관계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난해에 처리되지 못한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한 논의, 노조 전임자 급여 문제, 산별노조화와 산별교섭, 복수노조 등 많은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는 매년 노사관계 관련 국제평가에서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세계 노동운동의 메카' 라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대립적 노사관계의 해소를 위해서는 노동계가 파업만능주의와 총파업 남발과 같은 강경투쟁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고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법과 원칙'의 기조를 유지하는 일관된 태도를 지켜야 합니다. 경영계는 불신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올해는 투명경영과 열린 경영에 더욱 매진할 계획입니다. 특히 올해에는 노사정이 함께 '일자리 만들기'에 힘을 쏟았으면 합니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더 나은 일자리를 공급하는 것이 진정으로 국민이 우리 노.사.정에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수영 회장은 …

이수영(64) 경총 회장은 신사적이고 세심한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경총 회장 취임 직후 이수호.이용득 당시 양대 노총 위원장을 잇따라 방문하고 사회적 대화 창구를 재건하는 데 적극 나서 대화를 중시하는 온건 합리주의자라는 얘기도 들었다. 이 회장은 건전한 기업풍토와 기업인의 올바른 가치관 정립을 중시한다. 그래서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윤리경영.투명경영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말을 듣는다. 경총이 2004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투명경영 대상' 제도는 그의 이런 믿음 덕분에 나왔다.

▶1942년 경기도 개성에서 출생▶60년 경기고등학교 졸업▶64년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68년 영풍상사 입사▶70~76년 동양화학 전무▶84~91년 한.필리핀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96년 동양제철화학 대표이사회장▶98~2004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2000~2004년 인천상공회의소 회장▶2004년~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정리=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 바로잡습니다

1월 23일자 1면과 29면의 경총 이수영 회장 인터뷰 기사에서 '물러난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김 전 장관' 등의 표현은 잘못됐습니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물러날 예정이긴 하지만 현재 장관으로 업무를 수행 중입니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 내정자는 국회 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으면 정식으로 장관에 취임하게 됩니다. 이상수 장관 내정자를 비롯한 5개 부처 장관 내정자와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안은 11일 국회에 제출됐으며,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국회는 30일까지 인사청문회를 실시해 그 결과를 정부에 통보해야 합니다. 부득이한 사유가 발생할 경우 정부의 요청으로 최대 10일간 시한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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