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은 칭찬하는 말부터 물어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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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기업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가 있다. 서울 서초동 LSI 어학원의 강사인 손지인(31.사진)씨다. 손씨는 현재 독일계 기업 사장과 미국 정보기술(IT) 업체의 여성 임원을 가르치고 있다. 일주일에 두세 차례 업무가 끝난 수강생의 회사 사무실에 찾아가 개인 교습을 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손씨는 호주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다녔다. 그 뒤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는 현지 고교에서 한국어 교사로 1년 반 정도 일했다. 그러다 1998년 귀국해 영어 강사 겸 외국 기업인 대상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손씨는 "외국 기업인들은 언어에 앞서 한국의 비즈니스 문화를 익히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난 사업 상대에게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어도 좋은지, 헤어질 때 포옹해도 괜찮은지 등을 손씨에게 묻는다는 것이다. "오늘 저녁에 중요한 바이어를 만난다. 한국 특유의 접대 문화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식으로 맞아야 하느냐"는 질문을 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손씨는 "외국인 임원들이 한국인 직원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자주 한다고 들었다"며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의사를 결정하는 스타일이 몸에 밴 것 같다"고 해석했다.

외국 임원들은 또 일상 대화에 앞서 직원들을 칭찬하고 위로하는 말부터 익히고 싶어한다고 손씨는 전했다. 저녁 늦게 남아 있는 직원에게 "밥은 먹었느냐, 집에 늦는다고 전화는 했느냐"고 한국어로 묻는 요령이나, 발표를 잘 한 직원을 치켜세우는 방법 등 상당한 고난이도(?) 표현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외국 기업인들이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노력하는 것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손씨의 평상시 말투까지 관찰해 흉내 낼 정도로 열성적인 제자도 있었다고 한다. 그 기업인은 남자인데도 "어머나"가 입버릇이 됐다고 한다. 손씨는 "지금까지 수강생 중 한 명도 빠짐 없이 '스트레스가 한국어로 뭐냐'고 물었다"며 "기업인들이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글=권혁주 기자 <woongjoo@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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