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빼든 '글래디에이터' 황영기 우리은행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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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황영기(사진) 우리은행장의 별명은 '글래디에이터'(검투사)다. 그가 삼성증권 사장(2001~2004년) 때부터 "최고경영자(CEO)는 검투사와 같다. 지면 죽는 검투사의 심정으로 변화에 대응한다"고 자주 말했던 데서 붙여졌다.

황 행장이 올해 새로운 '칼'을 빼 들었다. 공격 경영을 통한 몸집 불리기를 선언한 것이다. 과감한 점포 확장을 통해 자산을 대폭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그동안 은행들이 점포 줄이기를 통한 경영 내실화에 치중해 온 점에 비추어 우리은행의 행보는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황 행장은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이틀에 한 곳꼴로 지점을 새로 열고, 자산 규모를 20% 늘리겠다"고 밝혔다. 지점(지난해 말 현재 741개)을 100개 늘리고 자산(137조5000억원)은 30조원 늘리겠다는 것이다. 30조원은 현재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이 인수경쟁을 벌이고 있는 외환은행 자산(약 74조원)의 40%에 달하는 수준이다. 보통 우리은행이 1년에 자산규모를 10조원 정도씩 늘려왔던 점을 감안하면 '과감한 도전'인 셈이다.

우리은행이 공격 경영을 선언함에 따라 현재 외환은행 인수를 통해 영토 확장을 모색하고 있는 국민은행.조흥은행과 통합 작업 중인 신한은행 등 주요 은행 간 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일부 다른 은행도 자산을 20% 이상 늘리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올해 금융시장이 10~12% 성장할 것이란 예상을 감안하면 은행 간 영업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 행장이 14일 열린 2006년 경영전략회의에서 52개 지역 영업본부장에게 선물한 지휘봉 안에는 단검이 들어 있었다. 비록 날이 서지 않은 단검이지만 죽기를 각오해야 올해 영업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비장함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은행 부문은 자체 성장, 신용카드 부문은 인수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LG카드 인수와 관련해 매도자에게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황 행장은 "자체 자금으로 투자하되 주주 가치를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두 가지 인수 원칙을 갖고 있다"며 "LG카드의 현재 가격은 우리가 생각하는 범위를 벗어났다"고 말했다. LG카드가 전략적으로 필요하지만 비싸게 사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LG카드 주식 유통물량(17%) 중 14%가 (매매를 자주하지 않는) 외국인이 갖고 있어 가격 형성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이라며 "우리카드 부문을 키우는 것과 LG카드를 인수하는 것 등 두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종은행 논란과 관련, 그는 "토종은행론은 단순한 영업전략이 아니라 외환위기 후 공적자금을 투입받은 우리은행이 어려울 때 떠나지 않은 고객에 대한 보답 차원"이라며 "우리은행은 송금 수수료를 대폭 낮추고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등 국민의 사랑을 받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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