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농」등 규제 비판론 대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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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천주교는 최근 가톨릭농민회·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톨릭학생총연맹등 전국 단체들의 활동을 정지시킨 춘계 주교회의결의에 대한 교회 자체내의 비판과 재고를 요망하는 의견이 강력히 대두하고 있다. 춘계 주교회의 결정에 공개적인 비판을 제기하고 나선 사람은 정양모신부(서강대교수)와 한용희교수(숙대·전국평협회장).
정신부는 「가톨릭신문」기고를 통해 『주교회의 결정은 진보적인 현장교회의 중요성보다는 보수적인 제도교회 치중의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낸 실책』이라고 비판하면서 주교단의 새로운 결단과 시정을 촉구했다.
춘계주교회의는 민주화·인권·농민운동등 사회참여활동을 활발히 전개해온 이들 단체들을 비신자의 회원 가입, 주교단의 공식 인정이 없음등을 이유로 「활동정기」 결의를 했다.
춘계 주교회의는 『평신도사도직 단체는 가톨릭신자들로 구성해야한다』고 전제하고 『비신자에게도 회원자격을 부여한 가톨릭농민회 회칙은 더이상 존재할수 없다』고 결의했다.
주교회의 결정은 주교단의 방침과 교구강의 지시를 따라 가농과 전국평협의 경우 새규약을 제정, 승인을 받아 활동을 재개하도록 하는 「잠정중지」 형식을 취했다.
또 주교회의 결의는 『전통적인 교구자치제를 강조, 비록 전국기구일지라도 해당 교구장의 승인 없이는 그 교구내에서 활동 할수 없다』고 못박았다.
정신부는 이같은 결정은 교구자치제를 내세워 주교단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킨 처사라고 주장했다.
한회장은 『당시의 시대상황에 비추어 볼때 주교회의 결정은 이들 단체들의 사회정의 실현 활동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없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금할수 없다』면서 10월 추계 주교회의에서 재론되기를 바랐다.
주교단은 이 문제를 다룰때 현장교회와 제도교회를 각각 치중하는 입장이 엇갈려 격렬한 논란끝에 투표까지 실시, 「활동정지」의 결정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신자의 회원가입 때문에 활동을 정지당한 가농의 경우에 대해 정신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사랑과 정의를 바탕으로 하는 농민의 자발적·자주적 모임이 되려는(가농회칙 제2조) 가톨릭 농민회에 가입해 10년, 20년 고락을 함께 해온 회원들을 단순히 세례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내쫓는 것이 과연 진정한 사목적 배려가 될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모든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타가 공인하는 가톨릭단체로 활동해온 신도단체들을 민주화 투쟁에 힘써야할 절박한 시기에서 새삼 문제시해 활동정지를 시켰느냐는 「시점」의 문제다.
따라서 활동정지 결정에 제시된 이유는 「명분」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게 비판의 밑바탕이다.
새로운 회칙이 주교회의 승인을 얻을때까지 전국활동의 「잠정중지」를 당한 평협의 경우 한회장은 『84년 주교회의서 인준까지 받은 아무 잘못이 없는 회칙을 일방적으로 중지시킨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추계 주교회의에 활동중지 당시의 회칙을 그대로 제출하겠다는 「현 회칙고수」입장을 분명히 했다.
가농등의 활동정지 조치가 내려진 신학적 배경에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고통현장」을 함께 하려는 진보주의노선과 구령을 앞세우는 권위적인 보수적 노선의 주교들간의 갈등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부는 『주교단의 결정은 권위의식이 크게 작용한 듯 하며 교회 직분을 「봉사」로 이해하기보다는 「지배」로 곡해하지 않았나 염려된다』고 말했다.
현재로는 가농등의 활동 정지결정이 추계주교회의서 재론돼 「활동정지」가 풀릴수 있게 될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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