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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기춘, 김종덕에게 좌파 지원 차단 서둘러라 수차례 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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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기춘(左), 김종덕(右)

김기춘(左), 김종덕(右)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작성을 김종덕(60)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직접 지시했다는 문체부 고위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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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팀 관계자는 “김 전 실장이 2014년 10월 김 전 장관에게 ‘좌파들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는 것을 제대로 챙기라고 했는데 왜 보고가 없느냐. 서두르라’고 수차례 강조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 출석해 “저희들은 블랙리스트를 만든 일이 없다”고 하는 등 의혹을 부인했다.

특검, 문체부 고위관계자 진술 확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직접 지시
챙기라 했는데 왜 보고 없나 질책
정부 비판 예술인에 빨갱이 지칭도”
“진보 배제 정책 군말없이 따르겠다
김종덕, 장관 임명 전 김기춘에 약속”
김 전 실장 - 조윤선 장관 소환 계획

최근 특검팀의 조사를 받은 문체부 고위 관계자 A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 전 실장을 만나고 온 김 전 장관이 ‘이념 편향적이거나 정치색이 짙은 예술가들에 대해 지원금 지급 상황이 어떤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A씨는 당시의 블랙리스트 작업에 대해 “청와대 쪽과 우리 부처(문체부)와 조율이 잘 안 되는 부분을 전반적으로 확인했다”고도 했다.

특검팀은 김 전 실장이 김 전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블랙리스트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빨갱이’라 지칭하고 지원금을 끊는 작업을 ‘말살정책’이라고 불렀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다. 또 김 전 실장이 정부 비판적인 영화가 상영되는 것에 대해 “국민이 반정부적인 정서에 감염될 수 있으니 자금줄을 끊어 말려 죽여야 한다”고 지적했다는 진술을 확인하고 있다. 앞서 유진룡(61) 전 문체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김 전 실장이 ‘변호인(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영화)’ 같은 영화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을 만드는 회사를 왜 제재하지 않느냐고 했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블랙리스트 작성이 본격화된 시기를 2014년 8월 무렵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는 진보 성향의 문화·예술인 지원 문제를 놓고 김 전 실장과 갈등을 빚던 유 전 장관이 물러나고, 차은택(48·구속)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최순실(61·구속)씨의 추천을 받은 김 전 장관이 임명된 시기다. 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이 임명되기 전 김 전 실장과 진보 성향 문화·예술인 지원 배제정책 등에 군말 없이 따르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진술도 특검팀이 확보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김 전 장관이 김 전 실장과의 독대 이후 당시 문체부 기획조정실장이던 송수근(56) 문체부 1차관을 호출해 블랙리스트 ‘액션플랜’ 마련을 주문했다는 조사 내용도 확인하고 있다. 이 시기에 송 차관은 문체부 실·국장들과 협의해 ‘건전콘텐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건전콘텐츠 TF는 문화·예술계를 문예, 영화 등 영상, 출판 등 미디어 세 카테고리로 분류해 지원 배제 명단을 확대한 것으로 특검팀은 파악하고 있다. 특검팀 관계자는 “명단이 작성된 후 문예위원회(문예진흥기금 배분기관)의 위원 구성을 보수 성향 인사 중심으로 재편하는 작업 등도 함께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특검팀과 문체부 등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액션플랜 보고를 위해 또 한 차례 김 전 실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이대로 빠짐없이 잘 수행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데 힘을 아끼지 말라”는 말을 김 전 실장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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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이 같은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김 전 실장과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특검팀은 조만간 조윤선 장관과 김 전 실장을 차례로 소환할 계획이다. 이규철 특검보는 9일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문체부 고위 관계자들의 행위는 사상 및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 판단,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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