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세 닭띠 할머니 “아들과 걷는 게 보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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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일 오봉산 정상에서 해맞이 행사에 참여한 문대전 할머니(오른쪽)와 아들 정원복씨. [사진 정원복]

1일 오봉산 정상에서 해맞이 행사에 참여한 문대전 할머니(오른쪽)와 아들 정원복씨. [사진 정원복]

“엄마, 안 힘드나?”

문대전씨와 55세 아들 정원복씨
새해 첫날 함께 대구 오봉산 올라
“어머니 치매도 산책하며 좋아져”

“응.”

“끝까지 올라갈 수 있재?”

“응. 응.”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 첫날. 아들은 늙은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대구 북구 오봉산에 올랐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노모는 한 발짝을 걷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등산객들이 이 모습을 신기한 듯 지켜봤다. 아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어머니와 발맞춰 천천히 산을 올랐다. 그러면서 혹여 어머니가 추울까봐 몇 번이고 그의 옷깃을 여며줬다. 해가 뜨기 전 정상에 닿은 모자는 함께 새해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니 문대전씨는 올해 108세가 됐다. 1909년 닭띠 해에 태어나 이번이 9번째 맞는 닭의 해다. 한 세기를 넘게 살았지만 아직도 아들과 함께 산 정상에 오를 정도로 건강하다. 효자로 소문난 정원복(55·대구시 산격동)씨는 틈만 나면 어머니 손을 잡고 걷는다. 가끔 대구 팔공산이나 경북 칠곡 가산에 오르기도 한다. 주변에선 노인이 무리해서 등산하다가 몸을 상할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하지만 정씨는 어머니의 무병장수 비결이 ‘걷기’라고 믿는다.

문씨는 100세가 되던 해 치매를 앓았다. 대소변을 못 가리는가 하면 집안에 있던 가재도구를 모두 밖으로 내다놓기도 했다. 정씨는 어머니가 자신을 보고 “누구십니까”라고 물어봤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답답한 마음에 모친을 데리고 동네 산책하러 나간 것이 둘의 인생을 180도 바꿔놨다.

“산책하러 나갔더니 엄마가 너무 좋아했어요.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꽃도 보고 하늘도 보고…. 이제라도 바깥 나들이를 함께 많이 해야겠다 생각해 1㎞, 2㎞ 산책 거리를 늘려나갔더니 건강도 좋아지고 치매도 싹 나았죠.”

문 할머니와 정씨는 살던 경북 영천시를 떠나 1980년 대구에 둥지를 틀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여읜 정씨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유통관련 작은 사업체를 하며 어머니와 둘이 산다.

사람들은 모자의 나이가 이렇게 차이 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어머니는 43세의 나이에 아버지에게 시집을 왔어요. 당시 아버지 나이가 50세. 부모님께서 결혼 이듬해 아들을 낳았는데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53세가 된 어머니가 어렵사리 절 낳았죠. 워낙 어머니가 건강한 체질이라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정씨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엄마가 새해에 사람들한테 덕담 한마디 해줘”라고 했다. 문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하고 싶은 일이 모두 잘 되고 행복하세요”라고 말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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