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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탄생 직후 생긴 ‘암흑물질’ 넌 누구냐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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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은하단과 큰 은하단이 충돌해서 만들어진 총알 은하단. 가시적 질량이 모여있는 분홍색 영역과 암흑물질이 모여있는 파란색 영역이 확연히 구분된다. 여러 우주망원경의 이미지를 합성했다. [NASA]

작은 은하단과 큰 은하단이 충돌해서 만들어진 총알 은하단. 가시적 질량이 모여있는 분홍색 영역과 암흑물질이 모여있는 파란색 영역이 확연히 구분된다. 여러 우주망원경의 이미지를 합성했다. [NASA]

“다른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나서 남는 한가지, 이것은 진실일 수밖에 없다.”

[조현욱의 빅 히스토리] 은하의 씨앗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네 개의 서명』에 나오는 대목이다. 천문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셜록 홈즈의 탐정 업무와 비슷한 일을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보이지 않는 물체 문제다. 행성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아이작 뉴턴의 중력이론과 운동법칙이 잘 들어맞는 것으로 확인돼 왔다. 하지만 여기에 어긋나는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천체가 있다면? 뭔가 보이지 않는 물체가 있다는 것이 해답이다.

예컨대 천왕성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확인됐을 때를 보자. 천문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행성이 근처에 있다고 보았다. 그로부터 몇 해 지나지 않은 1846년 해왕성이 발견됐다. 이와 대조되는 사례도 있다. 수성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에 관한 것이다. 벌칸이라 불리는 새로운 행성 때문인 것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해답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론에서 왔다. 뉴턴의 중력이론을 수정했던 것이다.

우주의 초기에 암흑물질이 먼저 모여 ‘거푸집’을 만들었고 그 속에 보통 물질이 모여 은하와 은하단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과거로부터 현재)오면서 암흑물질의 느슨한 연결망이 중력에 의해 붕괴하면서 점점 덩어리들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NASA/ESA]

우주의 초기에 암흑물질이 먼저 모여 ‘거푸집’을 만들었고 그 속에 보통 물질이 모여 은하와 은하단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과거로부터 현재)오면서 암흑물질의 느슨한 연결망이 중력에 의해 붕괴하면서 점점 덩어리들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NASA/ESA]

오늘날 천문학자들이 직면한 문제는 좀더 심각하지만 성격은 이와 비슷하다. 암흑물질 문제다. 우주론의 표준 모형을 보면 우주의 5%는 통상 물질, 27%는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 68%는 알 수 없는 암흑에너지가 차지한다(그래픽).

암흑에너지란? 우주의 팽창 속도를 점점 빠르게 만들고 있는 미지의 힘을 말한다. 우리 우주는 138억년 전 생겨난 뒤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70억년 전부터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현재 지구로부터 480억 광년 바깥의 우주는 빛보다 빨리 팽창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무엇이 이 같은 가속 팽창을 일으키고 있는지는 전혀 모른다. 진공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와있는 정도다.

그렇다면 암흑 물질은 무엇인가? 중력, 따라서 질량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물질이다. ‘암흑’이란 빛을 내거나 흡수하거나 반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실은 ‘투명’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어떤 전자기파 영역에서도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암흑물질 가설은 우주의 구조 형성, 은하의 형성 및 진화 등 각종 모델링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나선 은하의 회전 속도

태양(별) 주위를 도는 행성이 원심력에 의해 튕겨나가지 않는 것은 별의 중력이 행성을 잡아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행성의 운동과 별까지의 거리를 분석하면 이 같은 인력을 발휘하기 위해 별이 가져야하는 질량을 알 수 있다. 같은 방법으로 은하의 질량도 잴 수 있다. 은하 바깥쪽 궤도를 돌고 있는 (수소) 구름의 가속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지난달 작고한 천문학자 베라 루빈이 이룩한 대표적인 업적이 그것이다.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수많은 은하를 측정한 결과 이런 회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질량이 실제 보이는 별과 가스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무려 5배였다. 여기서 떠오른 그림은 암흑물질로 구성된 커다란 구형이 별과 가스로 구성된 은하 원반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다.

타원 은하와 은하단의 뜨거운 가스층

대형 타원 은하들은 수백만, 수천만 도에 이르는 가스로 된 대기층을 가지고 있다. 이들 가스의 압력은 은하의 질량이 발휘하는 인력과 균형을 이루고 있다. 우주에 쏘아올린 X선 망원경으로 가스의 압력을, 광학 망원경으로 별들의 질량을 각각 측정할 수 있다. 그 결과 이들 은하에는 가스를 잡아두는 데 필요한 중력을 발휘할 만한 질량이 충분치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나타나는 별과 가스의 5배에 이르는 중력을 가진 암흑물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은하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암흑물질이 없다면 고온의 가스층은 벌써 흩어져 버렸을 것이다.

중력렌즈 효과로 추정되는 질량

중력이 큰 물체는 주위를 지나가는 빛을 끌어당겨 자기 쪽으로 휘게 만든다. 중력이 렌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그래픽). 빛이 휘어진 정도를 계산하면 해당 물체의 중력, 따라서 질량을 알 수 있다. 관측 기술이 발달하면서 은하나 은하단이 일으키는 미세한 중력 렌즈 효과도 속속 관측되고 있다. 이를 통해 추정되는 질량은 실제 관측되는 별이나 가스의 질량을 크게 넘어선다. 그 차이를 설명하려면 암흑물질이 필요하다.

별과 은하를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

수퍼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암흑물질이 없었다면 별과 은하는 거의 생성되지 않았을 것으로 나타났다. 빅뱅 후 초기 단계를 보자. 통상 물질 가스 속에 있는 원자들은 압축되면 더욱 자주 서로 충돌한다. 가스가 더 이상 압축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암흑물질 입자는 서로 간에 상호작용이 매우 미약하므로 훨씬 더 쉽게 뭉친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우주가 팽창·진화하면서 처음 생긴 구조는 암흑물질의 덩어리 즉 ‘헤일로’ 였다.

최초의 헤일로들은 지구 정도의 질량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밀도가 훨씬 더 낮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들은 뭉쳐지고 점점 커졌다. 그 중 일부는 마침내 충분히 무거워져서 다량의 수소와 헬륨을 비롯한 통상 물질을 끌어들였다. 최초의 별과 은하의 씨가 된 것이다. 암흑물질을 포함하는 시뮬레이션에서 얻어진 우주의 구조는 실제 관측된 결과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정체는 몰라도 보통 물질은 아닌 것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대부분은 암흑물질이란 증거는 폭넓고 깊다. 보통 물질 15%, 암흑물질 85%의 비율이다. 하지만 도대체 그게 뭐란 말인가?

무엇이 아닌지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WMAP 위성이 빅뱅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태초의 빛’인 우주배경복사를 정밀관측한 결과를 보자. 이에 따르면 암흑물질은 양성자, 중성자로 구성된 보통 물질일 수는 없다. 뜨거운 가스나 차가운 가스, 갈색 난쟁이별이나 붉은 난쟁이별, 중성자별이나 블랙홀도 아니란 말이다.

인기있는 모델들에 따르면 암흑물질은 우주가 탄생한 직후에 생성된 특이한 입자로 주로 구성돼 있다.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초대칭 입자인 윔프)’, 가벼운 가상입자인 액시온, 비활성 중성미자(오직 중력에만 반응하는 이론상의 입자) 등이 그런 예다. 입자물리학 표준모형에 없는 입자들이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윔프다. 그 이름은 오로지 중력과 약력에 의해서만 상호작용을 한다는 뜻이다. 수소 원자보다 100배 이상 무거운 입자가 빅뱅 후 1초 이내에 엄청나게 많이 생성됐다는 가설이다.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차가운 암흑물질’이라고도 부른다.

대체로 윔프를 예정하는 세 종류의 탐지 방법이 진행 중이다. 하나는 극도로 예민한 감지기로 직접 포착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암흑물질 입자가 붕괴하거나 소멸할 때 생기는 X선이나 감마선을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다.

만일 윔프가 주인공이라면 매초 수십억 개 이상이 우리 몸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극히 희박한 확률로 원자핵과 충돌할 수도 있다. 그때 생기는 미세한 진동을 극저온 결정 탐지기에서 잡아낸다는 것이다. 미국 미네소타주의 폐광산 지하에서 가장 민감한 탐지기로 시도한 ‘저온 암흑물질 탐지(LUX)’는 실패했다. 이보다 30배 민감한 탐지기를 동원한 새로운 실험이 미국의 금광 지하에서 이달 중 시작될 예정이다.

암흑물질의 또 다른 후보인 가상입자 액시온도 직접 탐지가 가능하다. 강력한 자기장과 상호작용해서 전파를 생성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를 탐지하기 위한 실험은 모두 실패했지만 다른 기법을 동원한 노력이 곧 시작될 예정이다.

중력 렌즈 효과 빛이 무거운 물체의 중력에 이끌려 휘어지는 것이 중력 렌즈 효과다. 과도한 렌즈 효과를 근거로 암흑물질의 양을 계산할 수 있다. [NASA]

중력 렌즈 효과 빛이 무거운 물체의 중력에 이끌려 휘어지는 것이 중력 렌즈 효과다. 과도한 렌즈 효과를 근거로 암흑물질의 양을 계산할 수 있다. [NASA]

암흑물질을 간접적으로 탐지하려는 접근법도 있다. 붕괴에 따른 독특한 흔적을 관측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이론에 따르면 윔프 입자들은 서로 충돌하면 소멸하면서 에너지 입자의 샤워와 복사파를 내놓는다. NASA의 페르미 감마선 망원경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이 같은 감마선을 관측하는 것이다. 한편 이런 감마선은 은하의 핵에 있는 강력한 자기장과 액시온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우주정거장에 설치된 알파자기분광계(AMS) 도 이런 측정을 계속하고 있다. .

직접 만드는 방식도 시도 중이다. 암흑물질 입자는 빅뱅 후 몇 나노초 만에, 온도가 1000조 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입자 가속기에서 이 같은 환경을 재현하면 생성이 가능할지 모른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대형강입자충돌기( LHC)에서14조 전자볼트로 양성자들을 충돌시켰지만 아직 하나도 검출되지 않고 있다.

기존의 중력이론을 수정하는 방법은?

소수의 학자들은 암흑 물질을 부정하는 대신 중력 법칙을 수정함으로써 이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예컨대 먼거리에서는 중력이 거리의 제곱이 아니라 거리 그 자체에 비례해 약해진다는 식이다. 이것으로 은하의 회전 속도가 너무 빠른 문제는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은하단 내 은하들의 운동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는 못했다. 2006년 두 개의 은하단이 합쳐져서 ‘총알 은하단(사진)’을 만드는 현상이 관측됐는데 중력의 중심이 가스나 별에 있지 않았다. 수정 이론이 옳다면 중력 중심이 가스 쪽에 있었어야 한다. 대부분의 우주론자는 수정된 중력 이론을 유효한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조현욱 과학과 소통 대표 poemloveyo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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