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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대체못할 문제해결·소통 역량 키워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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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호 10면

우리 사회는 대전환의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고 청년층 일자리 문제는 심화되며 소득 불평등 악화도 우려되고 있다.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에 실망한 국민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변화의 기저에는 세계 모든 국가의 경제구조와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4차 산업혁명이 있다. 2016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는 디지털 기술이 물리·생물 등의 영역과 기하급수적으로 융합되는, 클라우드·빅데이터·인공지능·사물인터넷(IoT)·3D프린터 등 급격한 기술 변화가 일어나는 임계점(tipping point)이 2025년으로 제시됐다. 9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이런 대전환의 시기에 한국이 낙오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영국은 18세기 중반 증기기관과 기관차를 중심으로 한 1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면서 세계 최강 국가로 부상했고, 미국은 전기와 자동차로 대표되는 2차 산업혁명에서 20세기 초 영국을 따돌렸으며, 인터넷과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3차 산업혁명과 지금의 4차 산업혁명까지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다. 한국은 1차 산업혁명에 낙오하면서 일본에 점령되는 수난을 당했으나 광복 후 지난 70년 동안 2차와 3차 산업혁명에서 빠른 추격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다보스 포럼에서 발표된 4차 산업혁명 준비 정도에 대한 국제비교에서 한국은 세계 42위권으로 나타났다. 이는 더 이상 한국이 추구해온 빠른 추격자 전략은 통하지 않으며 선도자(first mover)로 대전환을 해야 한다는 경고다. 한국은 다른 국가가 만든 상품을 모방해 조립하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새로운 물건·산업·플랫폼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능력이 떨어진다. 서울대 공대 교수들은 “한국인은 주어진 설계도를 해석하고 자원을 동원해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실행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제품과 서비스의 개념을 최초로 정의하는 역량, 혹은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힘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설계 역량’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는 학생들에게 정답 풀기만을 강요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지 못한 교육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학교에서 암기 위주 주입식 교육을 지속한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없어질 직업을 위한 교육을 하는 셈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여러 사람과 팀을 이뤄서 새로운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창조적 문제해결 역량과 소통기반 협력 역량이 크게 요구된다. 학생들이 이러한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받을 수 있어야만 기계에 대체되지 않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인재가 될 수 있다.


한국은 그동안 어느 나라보다 교육을 강조하면서 사람에 대한 투자를 통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이제 국정의 우선순위를 다시 교육 대전환에 두고 4차 산업혁명에서 한 명도 낙오되지 않고 모두를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는 인재로 키워야 한다. 교육 대전환을 통해 꺼져가는 경제성장에 다시 불을 붙이고 점점 악화되고 있는 사회이동성을 회복해야 한다.

교육의 대전환을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제도 개혁과 아래로부터의 현장 변화 간의 조화가 중요하다. 그동안 위로부터의 제도 개혁에만 치중하는 바람에 현장 변화가 뒤따르지 못하고 뿌리를 내리지 못한 정책이 많았다. 한때 교육행정을 책임졌던 필자도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이에 아래로부터의 현장 변화를 지원하는 정책들과 위로부터의 제도 개혁을 추진하는 방안을 정리했다.


먼저 아래로부터의 현장 변화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무엇보다 주입식·암기식 교육에 찌든 잠자는 교실을 깨우고 우리 학생들에게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초·중등 교육의 교수학습 방식을 대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 교사의 역량을 강화시켜 줄 수 있는 연수·지원·유인 체제를 새롭게 구축하고, 시범학교에서 시작해 성공 모델의 확산을 지원해야 한다.


다음으론 대입제도를 자율화해야 한다. 대학들이 학계 리더십을 발휘해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인재들에게 어떠한 역량이 필요할지를 함께 고민하고 학생선발 방식을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론 대학이 혁신생태계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학에 대한 규제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정부출연연구원과 대학을 통합해 혁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또한 혁신 바우처(voucher), 중소기업 연구지원제도 등을 통해 산업계에 대한 지원이 대학으로 흘러 들어가 대학의 대전환을 지원해야 한다.


향후 추진해야 할 위로부터의 제도 개혁들은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교사양성 시스템의 개혁이다. 2년 석사과정의 교육전문대학원을 점진적으로 확대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학부 전공과 관계없이 학생을 선발한 뒤 2년 동안 교수학습 방법을 중심으로 현장 교육을 강화하고, 졸업생에게는 임용시험 없이 졸업 후 2년의 수습교사 기간을 거쳐 정규 교원으로 임용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새로운 교원 양성 체제를 구축해 모든 교사가 프로젝트 학습과 수행 평가를 책임지고 할 수 있도록 교사의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다음으로 향후 10년의 교육과정과 대학 입시의 변화를 설계하는 교육개혁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5년 임기의 정권을 초월해 수능의 자격고사화와 컴퓨팅 사고력을 집중적으로 키워주는 미래형 교육과정의 도입과 같은 장기적 개혁 방안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대학을 교육부의 규제나 통제로부터 떼어내는 동시에 혁신전략부(가칭)를 신설해 그 관할에 넣는 것이다. 대학이 혁신생태계의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자율을 대폭 확대해 주는 것과 동시에 대학에 대한 지원을 과학기술 및 산업 지원과 함께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하자는 방안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청의 행정이 지나치게 규제 중심이고 일반자치와 분리돼 있는 문제를 극복하자는 제안이다. 교육감의 선출 방식부터 바꾸어 러닝메이트·간선제·임명제·직선제 중에서 각 시·도가 조례로 결정하도록 위임해야 한다.


이주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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