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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부산 위안부 소녀상 갈등…국익 중심으로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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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부산 일본 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를 놓고 한·일 관계가 급속히 얼어붙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일 양국은 동쪽에선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차기 행정부가, 서쪽에선 자국의 안보를 위해 시진핑 정권이 조여오는 압박을 받고 있다. 북핵 위협도 함께 마주하고 있다. 이런 두 나라가 손잡기는커녕 과거사 때문에 다시 으르렁거리는 것은 이유가 어떻든 무척 안타깝다.

이번 갈등을 둘러싼 대응을 보면 양쪽 다 잘못을 저질렀다. 우선 부산 동구청은 우왕좌왕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소녀상을 빼앗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너무도 뻔했다. 그럼에도 비난이 쏟아졌다고 불과 이틀 만에 소녀상을 돌려준 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베 정권이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들였다고 바로 똑같은 조치를 취한 우리 외교부도 사태를 키우는 잘못을 저질렀다.

일본 정부는 좀 더 신중히 대응하는 게 바람직했다. 부산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것은 한국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다. 부산 동구청을 포함, 우리 당국은 이를 막으려다 폭발 직전의 여론에 밀린 것이다. 이를 감안하지 않고 즉각 일본 대사 소환이라는 초강경수를 둠으로써 일본 정부는 양국 간 갈등을 부채질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건 과거사 청산도 중요하지만 외교관계에서 궁극적인 최고의 선은 따로 있다는 점이다. 바로 국익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일 관계도 미래지향적으로 가져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기에 대권주자 등 정치인들은 이번 갈등을 부추겨서는 안 되며 민족 감정을 대선 전략으로 악용해서도 안 된다.

과거엔 이런 일이 터지면 양국 중진 인사들이 닦아놓은 물밑 채널이 가동돼 난제들이 풀리곤 했었다. 하지만 갈수록 지한파·지일파 인사들이 사라져 소통이 힘들어졌다. 그나마 일본 측과 원만한 관계를 맺어온 주일대사 출신의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한일의원연맹 한국 측 회장인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 모두 최순실 사건으로 곤경에 처했다. 이번 사태로 또 한번 절감하지만 양측 모두 원활한 소통을 위해 물밑 채널 복원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