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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문자 폭력은 정치테러와 다름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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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자들이 문 전 대표를 비판한 국회의원들의 휴대전화로 항의 문자를 대량 살포하는 ‘문자 테러’를 하고 있다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들의 ‘문자 폭탄’은 당내뿐 아니라 다른 당 의원들에게까지 예외가 아니다. 그야말로 ‘나와 생각을 같이하지 않으면 무조건 적(敵)’이라는 식의 배타적 패거리주의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비판하면 문자테러 표적
중도로의 외연 확장에 장애 될 뿐
건전한 비판 겸허히 귀 기울여야

민주당의 4선 대선주자인 김부겸 의원은 ‘문 전 대표를 민주당 대선후보로 기정사실화했다’는 논란을 빚은 당내 민주연구원의 개헌보고서를 비판했다가 수천 건의 항의 문자 세례를 받았다. 비슷한 지적을 한 민주당의 초선 의원 몇몇도 “개헌을 하려면 당을 떠나라” “다음 공천받을 생각도 마라”는 식의 문자 테러와 ‘18원 후원금’ 같은 인신 공격을 당했다. 민주당 개헌보고서에 논평한 개혁보수신당 지도부 역시 문자 테러를 피해가지 못했다.

문자 테러나 ‘18원 후원금’은 사실 이번뿐이 아니다. 최순실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위증교사 논란을 빚은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이나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며 촛불시위를 폄하했던 같은 당 김진태 의원 등도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 온라인상에 국회의원 전화번호를 공개해 문자 테러를 부추기는 사태까지 빚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극우적 색채의 ‘일간베스트’ 회원들은 정유라씨를 구금하고 있는 덴마크 경찰에 “정유라는 결백합니다”라는 문자 폭탄을 보내기도 했다. 이들의 사이트에는 덴마크 경찰 공보관의 전화번호가 올려져 있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말해 모두 잘못된 일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토론장 게시판에 의견을 올리는 등 자신의 다른 생각을 정당하게 표현할 방법은 많다. 그렇지 않고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에게 욕설과 인신 공격이 담긴 문자 세례를 퍼붓는 것은 명백한 ‘사적 형벌’이요 범죄 행위다.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게다가 외국 경찰에 문자를 보내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 행위는 자칫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 있는 섣부른 행동이다.

특히 문 전 대표와 관련된 문자 테러는 특정 세력에 의해 조직적이고 공작적으로 행해진 냄새가 짙어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가뜩이나 민주당 안팎에서 ‘친문 패권주의’라는 비난과 “벌써 대통령이 된 듯 행동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문 전 대표를 비판하거나 그에게 불리한 주장을 한다고 해서 인신공격성 포화를 계속한다면 오히려 ‘친문 패권’에 대한 비판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따라서 문 전 대표가 중도로까지 외연을 확장하는 데 장애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일부 친문계에서조차 “문자 테러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명백한 해당 행위”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문 전 대표와 그의 지지자들은 당 내외에서 나오는 건전한 비판에 겸허히 귀 기울여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린 것도 지극히 배타적인 친박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