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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옆자리에 사장님·부장님…우리 사무실은 ‘거대한 원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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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새로운 해를 맞아 저마다의 혁신을 꿈꾸는 기업들의 고민 중 하나가 공간 개선이다. 환경이 바뀌면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도 바뀌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사무 환경 혁신을 통해 분위기를 쇄신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한다.

소통과 업무 효율성 높인 ‘개방형 오피스’

역삼동에 위치한 페이스북 코리아 사무실엔 벽과 칸막이가 없다. ‘빠르게 움직인다’를 주요 가치로 삼은 회사답게 빠른 의사 소통과 결정을 위해 개방형 오피스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사진 김현동 기자]

역삼동에 위치한 페이스북 코리아 사무실엔 벽과 칸막이가 없다. ‘빠르게 움직인다’를 주요 가치로 삼은 회사답게 빠른 의사 소통과 결정을 위해 개방형 오피스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사진 김현동 기자]

사무실 공간 개선의 국제적인 트렌드는 ‘개방형’이다. 사무실 내부의 벽과 칸막이를 없애고 널찍한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방식이다. 직원들과 부서 간의 소통과 협업을 강조하는 기업 문화가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다양해지는 오피스 인테리어
페북, 공간 오픈해 빠른 의사소통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move fast
누워 일할 수 있게 큰 쿠션 놓은 곳도
미래엔 ‘아웃도어 오피스’ 나올 것

외국의 창조적 기업들에선 이미 시작된 현상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의 페이스북 사옥은 ‘거대한 원룸’으로 불린다. 축구장 7개 규모(약 4만㎡)의 공간에는 내벽은커녕 그 흔한 파티션 하나 없다. 임원실, 심지어 사장실도 없다.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도 일반 직원 옆에 책상 하나 두고 함께 근무한다. 구글·야후·이베이 등도 개방형 오피스를 선택했다.

우리나라 역시 점차 개방형 오피스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서울 역삼동 캐피탈타워에 위치한 페이스북 코리아는 2014년 5월 역삼동 사옥을 열면서 ‘열린 오피스(open office)’를 표방했다. 약 1300㎡(약 400평)의 한 층이 뻥 뚫린 오픈 구조(3분의 1가량의 회의실 및 기타 공간 제외)로 내벽과 파티션이 없다.

페이스북의 핵심 가치는 ‘빠르게 움직인다(move fast)’이다.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자는 취지다. 전 세계 페이스북 사무실의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공통적으로 ‘무브 패스트(move fast)’일 정도다. 개방형 오피스는 이런 핵심 가치를 공간으로 구현한 결과다. 직급 서열을 구분하지 않고 업무별로 자유롭게 앉는 탁 트인 오픈형 사무실에서 직원들끼리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하고 의사 결정도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서다. 방이 따로 구분돼 있고 높은 파티션으로 시야가 가려지면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개방형 오피스에선 지나가던 상사·팀원들과 바로 눈을 맞추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의견을 나눌 수 있다. 이 회사에 근무하는 김선정(33)씨는 “탁 트인 공간에서 다 같이 일하다 보니 다른 팀과도 수월하게 의사 소통할 수 있어서 좋다”며 “무엇보다 직원들 간에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가깝고 수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역삼동 GS칼텍스 역시 2015년 개방과 소통에 초점을 맞춘 업무 공간 리뉴얼을 단행했다. 인사업무 담당 직원들이 상주하는 27층의 절반을 시범적으로 개방형 오피스로 조성해 760㎡(약 230평) 정도의 공간을 벽과 칸막이가 없는 하나의 거대한 방으로 꾸몄다.

업무 공간 선택할 수 있는 모바일 오피스

판교에 위치한 이트너스 사무실에는 고정된 자리가 없다. 직원들은 출근 후 개인 사물함에서 노트북을 꺼내 각자 원하는 자리에 앉는다.

판교에 위치한 이트너스 사무실에는 고정된 자리가 없다. 직원들은 출근 후 개인 사물함에서 노트북을 꺼내 각자 원하는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개방형 오피스에 찬성하는 건 아니다. 개방형 오피스는 소통과 접근을 상징하지만 소음에 민감하고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사람에겐 스트레스를 유발시켜 오히려 생산성 저하를 가져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2012년 발표한 ‘한국 기업의 워크스마트 실천방안’ 리포트에 따르면 개방형 오피스에서 일하는 응답자의 73%가 “프라이버시가 확보되지 않고 있다”고 대답했으며 실내온도/환기(30%), 개인 업무 공간 부족(19%), 소음진동(18%) 등의 불만을 토로했다.

기업 공간 컨설팅 업체 이트너스 디자인의 황희전 이사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선 완벽하게 개방된 형태보다 중간 정도의 개방성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집중 업무 공간 또는 독립 공간 등의 대안 시설을 함께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무가구 전문 업체 퍼시스가 오피스 디자인 기업 겐슬러와 함께 연구한 ‘2015 사무 환경 트렌드 리포트’에서도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의 균형 있는 공간 계획이 가장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퍼시스 사무환경기획팀 전경진 책임연구원은 “소통과 협업을 위한 개방형 오피스의 이점은 분명히 있다. 다만 집중과 프라이버시를 위한 업무 공간도 함께 조성해 직원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대치동 유한킴벌리 본사. 개방된 업무 공간 한쪽에는 서서 업무를 볼 수 있는 스탠딩 테이블도 마련돼 있다.

대치동 유한킴벌리 본사. 개방된 업무 공간 한쪽에는 서서 업무를 볼 수 있는 스탠딩 테이블도 마련돼 있다.

유한킴벌리는 개인이 업무 공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꾸민 ‘모바일 오피스’의 대표 사례다. 2011년 8월부터 임원실과 고정석을 모두 없앴다. 대치동 본사 7개 층이 모두 변동 좌석제로 운영된다. 450여 명의 직원은 출근하면 개인 사물함에 있는 노트북을 꺼내 해당 부서 층의 앉고 싶은 자리에 앉는다. 벽도 칸막이도 없는 개방형 공간,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있는 집중 업무 공간 중 선택은 자유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카페 라운지 공간을 선택할 수도 있다. 탄력 근무제 시행으로 늦게 출근하는 임신부들을 위해 전망이 좋고, 서서 일할 수 있도록 책상 높낮이가 조절되고, 책상 앞부분이 오목하게 들어가 있는 좌석도 준비했다. 업무용 전화는 개인 휴대전화로 통합돼 있고, 사내 인트라넷 연결로 팀원 간 회의가 필요하면 메신저로 미팅콜을 한다. 공간 개선 후 직원들 사이에선 “의사 결정을 하는 임원이 주위에 있어 업무 속도가 빨라졌다” “다른 팀의 사안을 이해하고 협업이 쉬워졌다” 등의 긍정적 의견이 나왔다. 사원 만족도에선 직무 몰입도에 대한 긍정적 응답 비율이 제도 도입 전(2010년) 76%에서 도입 후(2013년) 97%로 상승했다. 같은 조사에서 사원들 간의 의사소통에 대한 긍정적 응답 비율도 65%에서 84%로 높아졌다.

생각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방’도 만들어

우아한형제들의 집중 업무 공간. 책상 하나, 의자 하나로만 구성된 작은 공간으로 스탠드 불빛이 은은해서 집중 업무를 보기에 좋다.

우아한형제들의 집중 업무 공간. 책상 하나, 의자 하나로만 구성된 작은 공간으로 스탠드 불빛이 은은해서 집중 업무를 보기에 좋다.

음식 배달 서비스 ‘배달의민족’ 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부분적으로 모바일 오피스를 도입하고 있다. 사무실의 약 20% 공간을 개방형으로 꾸미고, 전체 500여 명 직원 중 고정석이 필요한 디자인·개발직 등을 제외한 100명 정도의 직원이 사용하도록 했다. 김봉진 대표를 포함한 기획·영업·홍보 직군 직원들은 큰 테이블과 의자만 놓인 사무실에서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앉는다. 회의와 외근이 많은 업무 특성상 고정석을 없애고 공간 효율성을 높인 것이다.

잠실 석촌 호수 풍경이 넓게 펼쳐지는 우아한형제들의 다목적 공간. 빈백에서 누워서 일하는 직원들도 있다.

잠실 석촌 호수 풍경이 넓게 펼쳐지는 우아한형제들의 다목적 공간. 빈백에서 누워서 일하는 직원들도 있다.

대신 사무실 곳곳에 딱 한 명만 들어갈 정도로 작은 크기의 업무 공간과 누워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빈백(형태가 움직이는 천 의자)이 놓인 공간들을 마련했다. 탁 트인 사무실 한편에는 텐트도 설치돼 있다. 페이스북 코리아에도 ‘조용한 방(quiet room)’이라 불리는 공간이 있다. 조용히 생각에 집중하거나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쉴 수 있도록 마련된 독립 공간이다.

이트너스 사무 공간 한쪽에 설치된 미니 정원. 화분마다 신입 직원 명패를 달고 직접 물을 주며 키울 수 있도록 했다.

이트너스 사무 공간 한쪽에 설치된 미니 정원. 화분마다 신입 직원 명패를 달고 직접 물을 주며 키울 수 있도록 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과 생산성이 비례하는 시대는 지났다. 구성원들 간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매니페스토 건축사 사무소의 안지용 대표는 “창의적이고 유연한 근무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사무 공간이 변화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개방형·모바일 오피스를 넘어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고정된 사무실이 아닌 외부에서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아웃도어 오피스’ 개념까지 확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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