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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가족] 싱글당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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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시인 신현림씨가 딸 서윤이와 함께 서울 한남동 삼성리움미술관을 찾았다. "싱글맘은 다른 여성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신씨. 그래서 ▶하루 두끼라도 알차게 먹기 ▶가방부터 방 안까지 쓸데없는 것 정리하고 짐 가뿐하게 하기 ▶말을 적게 하고 운동 열심히 하기 등의 원칙을 세웠다. 강정현 기자

따가운 시선과 경제적 어려움. 미혼모 등 '싱글 맘'들의 고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미혼모와 미혼부는 12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혼에 따른 '싱글 가구'도 2000년에 이미 24만 가구를 넘어섰다.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이지만, '싱글 맘'들은 주위의 편견과 냉대에 시달린다. 때문에 존재를 감추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흐름이 감지된다.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이들이 늘고 있다. 비슷한 처지끼리 모임도 활발하다. TV와 영화에선 더 이상 초라한 '싱글 맘'들을 찾기 어렵다. 변화는 시작됐다.

*** "꿋꿋하게 살아갈 힘을 나누고 싶다"

"얼굴처럼 가족 형태도 다른 거야"
애가 상처 안 받게 '예방주사'

"택시 기사가 아이에게 '아빠는 어디 가셨니'라고 묻더라고요. 아무 말 못하기에 얼른 이혼했다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이혼이란 말을 어쩜 씩씩하게 잘 하느냐며…"

딸 서윤(5)과 함께 도착한 시인 신현림(45)씨가 방금 전 에피소드를 늘어놓는다.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을 텐데 목소리는 밝다. 2003년 결혼 6년 만에 이혼한 신씨는 '씩씩한' 싱글 맘의 전형. 최근 자신의 경험담을 모아 '싱글맘 스토리'(휴먼앤북스)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수많은 싱글 맘과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갈 힘을 나누고 싶다"는 바람에서라고 한다. 물론 그 역시 이혼이 무슨 훈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기 처지에선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이혼 뒤 신씨는 오로지 글쓰기에 매달린다. 생계가 달렸기 때문이다. 서윤이를 밤 12시까지 운영하는 시립어린이집에 맡기고 집 근처 대학 도서관에 가 하루종일 작업한다. 새벽까지 일을 할 땐 애 봐 줄 아르바이트생을 급구한다. "무작정 학교 앞 커피숍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매달리기도 했죠." 가장 큰 걱정은 딸이 겪을 지 모를 편견. 그래서 "얼굴이 다 다른 것처럼, 사는 모습도 다른 거야"라며 '예방주사'를 놓고 있다.

양지로 나온 싱글 맘이 신씨만은 아니다. 더 숨어 살았던 '싱글 대디'들도 서서히 존재를 드러낸다.

회원 4700명이 가입한 인터넷 육아카페 '즐거운 육아 상큼한 나들이(cafe.daum.net/smilebabies)'의 운영자는 혼자 19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는 손영철(35)씨다. 그는 자신의 육아일기를 공개하고 다른 엄마들과 육아정보를 주고 받는다.

또 5년 전 인터넷 채팅에 빠진 아내와 이혼한 김모(40)씨. 생업도 접고 초등학교 3.5학년인 남매를 키우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새 학년이 되면 담임교사에게 집안 사정을 말하고, 아이 친구가 놀러오면 그 집에 전화해 "한 시간만 놀리다 보내겠다"고 얘기하는 등 여느 엄마와 다름없다. 그는 "이혼의 상처는 크지만 얻은 것도 있어요.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으니까요" 라고 말한다.

*** "어렵지만 야무지게 살래요"

'아이 유일한 버팀목은 나'란 생각
미혼모 향한 냉대 버텨낼 힘

"실명 밝혀도 좋아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거든요. 제가 더 야무지게 버텨야 미혼모를 보는 인식도 바뀌지 않겠어요."

미혼모 보호시설인 서울 애란원에서 만난 김민주(28)씨는 당당했다. 아픈 과거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일상의 편견과 어려움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아픔을 관조할 수 있다는 건 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와 동일한 게 아닐까.

"26개월짜리 아들이 있어요. 늘 생각합니다. 이 아이의 유일한 버팀목은 저라고요. 뭐든 할 수 있어요."

그가 밝힌 긴 인생사를 검증할 능력은 없다. 등장인물마다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터이다. 하지만 파란만장이라는 말만은 적절할 듯하다.

친엄마에게 버림받고 재혼한 아버지로부턴 쫓겨나고…. 외로움 속에 몸과 마음을 준 유일한 남자는 '양다리'였다. 그마저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갈라서야 했다.

"아기를 지울 수 없었고, 낳은 뒤에는 입양 보내려 했어요. 하지만…끝내 아기를 포기할 순 없었죠."

쉽지 않은 선택. 현실은 냉혹했다. 하지만 삶의 의지는 더 강렬했다. 닥치는 대로 일을 배웠다. 다행히 지난해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가 방영된 뒤 한 미용업체가 비슷한 처지의 싱글 맘들을 돕는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거기 합격해 현재 헤어 디자이너의 길을 준비 중이다.

"경제적 여유도 없고,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꿈이 있어요. 당장 돈 벌려면 식당 일이라도 하면 되지만,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셈이죠."

과거 미혼모의 경우 입양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아이를 직접 키우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애란원에 따르면 매년 입소하는 200여 명의 미혼모 중 입양 대신 양육을 선택한 비율이 1993년 3.6%에서 지난해엔 30%선으로 뛰어올랐다.

*** 그래도 여전한 편견의 벽을 향하여

남자 짐 없으면 인부가 무시할까봐
이사할 때 남동생 옷…구두 빌려와

'당당한'싱글 맘, 싱글 대디가 늘고 있다지만, 현실은 아직 우호적이지 않다.

우선 편견. 이혼 후 혼자 딸을 키우며 사는 김모(40.여)씨는 "이사를 할 때 집에 남자 짐이 없으면 인부들이 무시한다는 말을 듣고 남동생 양복과 구두를 빌려왔다"고 밝혔다. 미혼모에 대한 편견은 특히 심하다. 여섯 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미혼모 정모(30)씨는 세컨드라느니, 일본인 현지처라느니 하면서 수군거리는 동네 사람들 때문에 우울증 치료까지 받았다. 애란원의 한상순 원장은 "아이 아빠에게 바로 이혼해도 좋으니 혼인신고만 해달라고 사정하는 미혼모들도 많다"고 말한다. 경제적 어려움 또한 큰 늪이다. 편견 때문에 취업이 쉽지 않고, 보호기관에도 최대 3년까지밖에 머무를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그토록 높아보이던 편견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 여기엔 대중문화의 영향도 컸다.

탤런트 이태란이 미혼모로 나온 KBS 드라마 '노란손수건'(2003년)이 대표적이다. 지난해엔 유달리 싱글맘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굳세어라 금순아''온리유''원더풀라이프''돌아온 싱글'등)가 많았다. 주인공들 모두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한국한부모가정연구소 황은숙 소장은 "싱글 맘이나 싱글 대디는 혼자 아이를 키우기로 어렵게 선택한 만큼 자녀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다"며 "사회가 한쪽 부모의 빈 자리를 메우는 데 조금만 지원해 주면 건강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영.이상복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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