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6일 인종차별주의자의 흑인교회 총기난사로 숨진 흑인 9명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추모사를 읽던 오바마 미 대통령이 목이 메인 듯 고개를 숙였습니다. 머리를 숙인 채 잠시 침묵하던 오바마 대통령이 갑자기 찬송가 ‘Amazing grace(놀라운 은총)’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은혜 이 얼마나 감미로운가. 나 같은 비참한 사람을 구해주셨네. 나 한때 길을 잃었으나, 지금 인도해주시고, 한때 장님이었으나, 이제 나 볼 수 있다네. 하나님의 은혜가 내 마음이 두려움을 알도록 가르치고 이 은혜가 두려움을 걷어내네. 얼마나 고귀한 은혜인가. 내가 처음 믿은 순간, 험난함과 고통과 유혹을 넘어 나 이미 여기에 왔네… 언젠가 내 육신과 심장이 멈출지라도, 삶이 멈출지라도, 주님이 내게 주신 면사포의 보호로 이 세상은 눈처럼 녹아내릴 것이라오… 주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시리니”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반주도 없이 오바마가 찬송가를 부르자 뜻밖의 상황에 어쩔 줄 모르던 참석자들이 하나 둘 일어나 대통령의 찬송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연주가 곁들여지고, 이윽고 수천 명의 추모객이 부르는 찬송가가 장례식장을 가득 채웠습니다.인종과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TV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미국인들의 환호와 박수가 미국 전역에 울려 퍼졌습니다. 자신의 인종적 입장을 드러내기 꺼렸던 오바마는 그날 자신이 흑인임을 드러내는 이례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언론들은 백인의 증오범죄에 의한 흑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불렀던 은총의 노래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울림을 만들었다고 전했습니다. CNN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른 그 순간이 오바마 대통령의 재직기간 중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남의 나라 대통령의 지나간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힐링의 리더십, 소통의 리더십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2017년 새해 첫날 아침 박근혜 대통령은 기자간담회라는 형식을 통해 그동안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라며 전면 부인했습니다. 기자들의 휴대폰과 노트북과 카메라 휴대가 일절 금지된 자리였습니다. 그런 상황의 함의가 무엇인지 말을 보태고 싶지 않습니다. 상처를 안고 절벽 앞에 서있는 심정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것이 이렇게 힘든 적이 또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오는 20일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됩니다. 8년의 재임 기간 동안 수많은 사진가운데 오바마의 인간적 측면을 드러내는 사진 몇 장을 골라봤습니다. 한번쯤 봤음직한 사진들입니다. 우리 사회의 권력자라면 으레 상상이 되는 그런 사진하고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간혹 사진도 인격이 됩니다.누가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런 사진들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성품을 가진 인물이 그 자리에 올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춘식 기자 kim.choonsi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