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견 데리고 유엔 회의 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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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내견 '파도'와 함께 연세대 교정에서 산책 중인 이익섭 교수.

시각장애인인 이익섭(54)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장이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제정을 위한 제7차 유엔 특별위원회에 안내견과 함께 간다. 이 원장은 2004년 초 열린 제3차 특위 때부터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해 왔다.

"시각장애인이 유엔 공식회의에 정부 대표 역할을 맡은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 안내견을 데리고 유엔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제가 처음인 셈이죠."

그는 16일부터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특위 참석차 13일 출국한다. 안내견 '파도'(래브라도 종.4세)는 13~14시간 동안 비행기 옆자리에 동승하는 건 물론 뉴욕에 도착한 뒤 특위 회의장과 호텔.식당에 이르기까지 이 원장과 행동을 함께 할 예정이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자유로운 보행의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안내견과 동행하기로 결심했어요. 조약을 만드는 각국 대표단이 저와 파도의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 권리 보호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지 않겠습니까."

2002년 활동을 시작한 이 특위는 올 9월 조약 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위에서 조약이 채택되면 각국은 국회 비준 등의 절차를 거쳐 법제화 과정을 밟게 된다. 법 앞에서의 평등, 이동 및 접근, 사회 참여 기회의 보장 등 다방면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국가보다 국민들이 장애인에 대해 따뜻한 정을 품고 있는 나라입니다. 제도적 보호장치만 좀 더 갖춰진다면 '장애인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어요."

하지만 아직까진 부족한 점도 많다고 했다. 2004년 7월 이 원장이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파도를 분양받았지만, 아직까지 모든 곳을 편안한 마음으로 동행할 순 없다고 한다.

"파도와 함께 처음 외출했을 때 느꼈던 자유로움을 잊을 수가 없어요.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기분이었죠. 시각장애인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거동할 수 있기 때문에 늘 뭔가에 얽매이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안내견이 더 많이 보급돼야 하는 이유지요."

이 원장은 외부 스케줄 등을 고려해 현재 일주일에 이틀 정도만 파도를 데리고 출근한다. 대신 주말의 산책과 운동은 언제나 둘이서 함께 한다.

초등학교 때 망막염을 앓은 뒤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해 15세 때 완전히 실명한 그는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을 접하고 적잖이 방황했다고 한다.

"장애를 제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누구나 저처럼 장애인이 될 수 있는데 너무들 한다 싶었지요. 하지만 '넌 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지극한 격려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석사(사회사업학), 시카코대에서 박사(사회복지정책학)학위를 받은 이 원장은 1994년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지난해 사회복지대학원장에 임명됐고, 현재 한국장애인복지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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