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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심야식당: 도쿄 스토리' 마츠오카 조지 감독&고아성

중앙일보

입력


오늘도 사람들은 일과를 끝낸 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 그 시각, 마스터(코바야시 카오루)의 하루가 시작된다. 메뉴에 없지만 손님들이 원하는 요리라면 무엇이든 만들어 주고, 신기하게 별말 없이도 그들의 아픔을 달래 준다. 아베 야로의 동명 만화가 원작인 TV 드라마 ‘심야식당’은 2009년 시즌1부터 2011년 시즌2와 2014년 시즌3까지 모두 일본 방송사 TBS에서 방영했다. 시즌4에 해당하는 ‘심야식당:도쿄 스토리’(12월 7일 국내 공개, 총 10화, 이하 ‘도쿄 스토리’)는 세계적 온라인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 시청자와 만난다. 이 드라마의 첫 시즌부터 연출에 참여해 왔을 뿐 아니라, 영화 ‘심야식당’(2014)에서도 연출을 맡았던 마츠오카 조지(55) 감독. 그는 이번에도 1·4·6·10화를 연출했다. 그중 4화 ‘오므라이스’ 편에는 한국 배우 고아성(24)이 출연한다. 12월 6일, 서울에서 마츠오카 감독과 고아성을 만났다. 마츠오카 감독은 인터뷰 내내 개그맨처럼 재치를 뽐내며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었다. 그 모습에 연신 웃음을 터뜨리던 고아성은 답할 차례가 되면 나긋한 목소리로 친구에게 말하듯 이야기했다. 어디선가 마스터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았다.


-넷플릭스가 제작을 맡아 이전 시즌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마츠오카 조지 감독(이하 마츠오카 감독) “넷플릭스는 기본 방침대로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각본·연출의 전권을 줬다. 단 하나, ‘한 화 정도에 해외 배우를 등장시키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오므라이스’ 편에 한국 배우 고아성을 캐스팅했다. 이전 시즌과 달리 넷플릭스로 여러 나라 시청자를 만나게 됐지만, 그 때문에 앞으로 내가 할 일이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음, ‘도쿄 스토리’ 반응이 좋다면 다음 시즌에서는 더 많이 해외 배우들을 기용하는 변화를 꾀할 수 있지 않을까.”

-‘오므라이스’ 편에서 고아성은 일본 물리학자인 아마미야(오카다 요시노리)와 사랑에 빠지는 한국 여자 유나 역을 맡았다.

마츠오카 감독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에서 본 고아성의 모습이 생각났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제안했는데, 흔쾌히 수락해 기뻤다.”

고아성(이하 고) “원작은 물론이고, TV 드라마 ‘심야식당’의 팬이다. DVD를 모두 가지고 있을 정도다. 좋아하는 시리즈에 참여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첫 시즌부터 드라마를 시청한 분들이라면 이 마음을 아실 텐데, 마스터의 식당 ‘메시야’ 세트장에 들어서는 기분이 정말 감격스러웠다(웃음).”

사진=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심야식당’이 일본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는 이유가 뭘까.

“팬으로서 드라마를 볼 때 ‘아주 일본적인 공간, 인물, 이야기인데도 신기하게 공감이 간다’고 느꼈다. 이번에 촬영하면서 그 이유를 깨달은 순간이 있었다. 유나가 혼자 메시야에 찾아가 마스터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지금 마스터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유나가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츠오카 감독 “맞다. 어찌 보면 ‘메시야’는 고해성사의 공간이다. ‘심야식당’에는 기본적으로 ‘잘 풀리지 않는 삶에서 어떤 갈림길에 놓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 사람들이 마스터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인생에서 한걸음 내딛을 용기를 얻는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지난 7년 동안 이 드라마를 연출해 왔다. 마스터 앞에서 고해성사하고 싶게 만드는, 친밀하고 너그러운 분위기. 다른 나라 시청자도 그런 정서에 공감한 것이 아닐까.”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 버전을 마츠오카 감독이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화 분량이 20분 내외인 짧은 드라마가 ‘심야식당’ 이야기에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마츠오카 감독 “(공손하게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며) 그렇게 느꼈단 말인가(웃음). 특히 드라마를 연출할 때는 단편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러려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각 캐릭터를 깎고 깎아서 그 정수만 보여 줘야 한다. 그것만으로 인물의 삶 전체를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내공 쌓인 배우들이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심야식당’에 출연하는 순간, 그 배우의 본전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면 된다(웃음). 마스터 역의 코바야시 카오루와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호흡이 척척 맞는 사이다. 극 중 메시야의 단골로 등장하는 배우들도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이다. 고아성 역시 이번에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대단한 배우’라고 느꼈다.”

-어떤 점에서 말인가.

마츠오카 감독 “유나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고아성은 메시야의 테이블에 말 없이 앉아 음식을 먹으며 표정만으로 연기한다. 그 분위기가 정말 자연스러워서, 일본 도쿄 신주쿠의 어느 골목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인물처럼 느껴졌다. 한국 여자인지, 일본 여자인지 헷갈릴 정도로. 시청자도 그렇게 느낄 거라 확신한다.”

“그렇다면 나로서는 대실패다(웃음). 대사 없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느껴져야 좋은 연기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유나가 확실히 한국 여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면…. 극의 설정상 유나는 일본에 온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역할이었다. 아직 일본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모습을 표현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다(웃음).”

마츠오카 감독 “으아, 아니다. 그 장면에 완전히 녹아든 느낌이었다!”

사진=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심야식당’에는 도쿄 신주쿠, 그것도 일본 뒷골목의 정서가 담뿍 담겨 있다. ‘오므라이스’ 편 후반에 유나가 일하는 서울 식당의 모습이 나온다. 서울의 어떤 정취를 담으려 했나.

마츠오카 감독 “우선 그 장면에서 ‘20분짜리 드라마를 해외에서 촬영하다니!’ 하고 시청자들이 놀라길 바랐다(웃음). 극 중에는 서울의 식당으로 나오지만, 실은 경기도 부천에서 찍었다.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허름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공간이 자주 나오지 않나. 그런 느낌의 식당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홍 감독님에게 추천받았다는 말은 아니다(웃음). 촬영 장소를 알아볼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부천에 가자마자 한 식당이 눈에 띄었다. 마음에 들어 내가 가서 바로 섭외했다. 식당 앞에 낮은 언덕이 있는데, 그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도쿄에서는 그런 언덕을 찾아보기 힘들다.”


-‘심야식당’은 도시인에게 은은한 위로를 전하는 작품이다. 두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 어떻게 위로하나.

“마사지 이용권을 사 준다. 마사지를 받는다고 해서 그 고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끔은 그런 물리적 방법이 오히려 도움될 때가 있다(웃음).”

마츠오카 감독 “음, 술을 같이 마신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지 않나. 함께 술을 마시다 보면, 보통 내가 먼저 취한다. ‘2차 가자~, 3차 가자~!’ 하다 정신 차리면 나만 남아 있더라. 같이 있던 친구가 사라진 건, 위로를 받았기 때문 아닐까(웃음).”

글=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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