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그라든 증시…내년엔 '박스권' 벗어날 원년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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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는 8월부터 주식거래 시간을 30분 늘리면서 거래 활성화에 나섰다. 아시아 증시와 겹치는 시간을 늘려 국내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기대는 빗나갔다.

28일 거래소에 따르면 증시 폐장시간이 오후 3시에서 오후 3시 30분으로 바뀐 올해 8월부터 지난 27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하루 평균 거래액은 4조2800억원을 기록했다. 거래 시간이 연장되기 전인 올해 1~7월 4조7100억원보다 오히려 뒷걸음질친 것이다. 코스닥 역시 하루 평균 거래액이 거래 시간 연장 전후로 3200억원 줄어들었다.

국내 증시는 6년째 1800~2100선을 벗어나지 못해 '박스피'라는 오명이 붙었다. 이런 장세에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인식이 굳어지며 늘어난 거래 시간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특히 올해는 최순실 사태에 따른 정치 불확실성에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미국 대선 등 굵직한 대외 변수 때문에 관망만 하는 투자자들이 더욱 늘었다. 올해 코스피 거래량과 거래액은 지난해보다 각각 16%, 15% 쪼그라들었다.

과연 내년엔 주가가 박스권을 탈출할 수 있을까. 내년 증시 향방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기업들의 실적이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무엇보다 과거에 비해 코스피 상장사들의 실적이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며 "여기에 대한 투자자의 전망이 긍정적으로 바뀌면 거래량은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피 상장사의 순이익은 내년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정책이 어떻게 구체화하는가다. 재정을 풀어 인프라를 짓는 등 성장을 우선하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 기조만 놓고 보면 수출로 먹고 사는 국내 기업으로선 호재다.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환율 추이도 지켜봐야 한다. 만일 트럼프 정부가 자국 기업의 손실을 막기 위해 달러화 강세에 제동을 걸면 증시는 오를 수 있다. 장인범 부국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앞으로 미국은 금리를 급하게 올리는 대신 재정 확대와 약 달러 정책을 동시에 펼 수 있다"며 "달러화 가치가 약해지면 반사적으로 원화 가치가 올라 국내 주식 등 원화 자산에 투자할 유인이 커진다"고 말했다. 장 센터장은 "그럴 경우 박스권에 갇힌 코스피가 상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대 의견도 있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센터장은 "이미 국내 증시는 대형주 쏠림 현상이 지배적이고 이를 바꿀 만한 계기가 없다"며 "내년에도 이런 흐름이 계속되며 숫자만 살짝 바뀐 박스권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새누리 기자 newwor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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