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같은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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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금 2만여명 학우 여러분은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위 때문이 아닙니다. 지하의 종철이도, 사경을 헤매는 한열이도 함께 느낄 이 땅의 민주화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박수소리)
23일 하오, 연세대 노천극장. 서울지역 25개대 학생 2만여명이 모여 연합집회를 갖는다. 극장 주변 숲속까지 빈틈없이 메운 남녀학생들.
전날 가두시위도중 전경들로부터 빼앗은 방패·헬멧등을 착용하고 40여명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며 분위기를 이끌자 학생대표들이 차례로 일어나 유머 섞인 열변을 토한다.
『부처님도 열(?)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직선제 개헌의 교시를 내렸다고 하더군요.』(폭소와 함께 『옳소』라는 함성)
「불교대학」인 동국대 총학생회장의 주장에 질세라 각 대학 학생들이 차례로 일어나 기발한 구호들을 외친다. 『군부독재 타도하여 부모님께 효도하자』(한양대), 『독재 타도하고 시험 좀 제대로 보자』『독재타도하고 2학기땐 공부하자』(경기 개방대), 『독재 타도하고 빨리 빨리 목사되자』(감신대) 등 「독재타도」 시리즈 구호가 이어지자 온통 웃음의 도가니.
마치 각 대학 시위경연 같은 집회가 축제(?) 분위기 속에서 2시간여동안 진행됐다. 「6·26 평화대행진에 적극 동참한다」는 내용의 결의문 낭독을 끝으로 집회는 막을 내리고 학생들은 시위에 들어갔다.
2만여명이 노천극장을 빠져나가는 데만 무려 30여분. 1㎞에 걸쳐 젊은이들의 시위행렬이 이어졌다. 1시간30여분동안 계속된 시위는 구호와 노래뿐 돌 하나 날지 않았고 최루탄 한발 터지지 않았다. 분임토의와 마무리 전체회의를 끝으로 하오 9시10분쯤 막을 내린 이날의 집회와 시위.
80년 이후 처음인 2만여명 집결도 놀라왔지만 끝까지 질서있는 평화 집회· 시위가 더 놀라왔다. <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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