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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쓸모 없는 골드버그 장치, 왜 만드냐고요?

TONG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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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루브 골드버그의 카툰. [사진=위키피디아]

루브 골드버그의 카툰. [사진=위키피디아]

미국의 만화가 루브 골드버그(Rube Goldberg, 1883~1970)가 그린 이 복잡한 연계 장치는 단지 자동으로 움직이는 냅킨일 뿐이다. 세상을 복잡하게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풍자였다. 이렇게 생김새나 작동원리는 아주 복잡하고 거창한데 하는 일은 아주 단순한 기계를 ‘골드버그 장치(Goldberg machine)’라 부른다.

그런데 미 항공우주국(NASA)은 효율성이라곤 없는 이 골드버그 장치의 재미와 기발함에 주목했다. 여러 물건들이 연계돼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과정을 우주비행사들의 과학적 상상력과 위기 대처 훈련에 응용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골드버그 장치 콘테스트들이 열리기도 한다. 이 장치에 흥미를 갖고 골드버그를 창작하는 학생들을 만나 보았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최재웅, 김민영, 전형민, 한대성 학생.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최재웅, 김민영, 전형민, 한대성 학생.

서울 대영중 2학년 4명의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이른바 소꿉친구들이다. 이들은 영등포 혁신교육지구의 동아리 지원 사업인 '자몽 프로젝트'를 통해 골드버그 창작동아리를 꾸렸다.

"학교 교과서와 영화 속 장면들을 보고 골드버그 장치라는 걸 알게 됐어요. 팀 구성원 중에는 발명교실에서 골드버그 수업을 들어 본 친구도 있었고요."

처음에는 조립만 하면 장치가 완성되는 조립 키트를 사서 만들곤 했다. 이후 점차 원리에 익숙해지자 우리 생활 주변의 날것 그대로의 재료들을 모아 설계도를 구상한 뒤 제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드락(압축 스티로폼)과 쫄대, 스티로폼 등을 사용하면 원하는 형태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다. 그동안 팀원들은 미니 자동차를 작동시키거나 종 울리기, 깃발 올리기 등을 시행하는 장치들을 제작했다.

골드버그 조립 키트로 연습하는 학생들.

골드버그 조립 키트로 연습하는 학생들.

과학적인 원리를 이용해 여러 가지 장치를 구상하는 것은 간단치 않았다. 장치를 연결해 연속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도 어려웠다. 작동 시간과 장치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해 다음 단계에 영향을 주는 것까지 세세하게 계산해야 해서다.

"수학과 공학의 융합이랄까요? 저희는 수학이나 과학 영재가 아니어서 기초 원리부터 수업을 받아야 했어요. 한 번 시작하면 거의 5~6시간씩 진행했는데 처음 이론 수업을 들을 때는 약간 지루하기도 했습니다. 함께 모이는 시간을 맞추는 것도 참 힘들었어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한두 번 실패는 약과였다. 한두 번 실패했을 때는 금방 마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했다. 하지만 실패 횟수가 점점 늘어날수록 지치고 힘들어 의욕도 없어지곤 했다. 실패의 원인은 아주 다양하게 나타났다. 생각하지도 못한 변이가 생긴다거나 A→B로 가는 경로를 고치고 나면 B→C로 가는 경로에서 막히고, 그 곳을 고치고 나면 A→B로 가는 경로가 다시 막히곤 했다. 한 부분을 연결하는 데만 1시간 넘게 매달린 적도 있었다.

"그럴 때는 모두 예민해지는 듯해 다른 재미난 일을 하거나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어요. 수십 번의 실패 후 이끌어낸 성공은 매우 뿌듯하고 정말 기뻤지요. 앞에 수많은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 기쁨이 배가 된 것 같습니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도 많았다. 한번은 반조립된 골드버그 장치를 가지고 창의적으로 연결하는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연결하다 보니 어디에 쓰이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장치가 하나 있었다. 모두들 고민에 빠졌다. '그 장치가 도대체 어느 곳에 쓰이는 걸까?' 한참동안 고민하다 결국 설명서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냥 특이하게 생긴 받침대여서 너무나 허무했다고 한다.

"골드버그의 매력은 일단 눈을 즐겁게 하고 성공의 짜릿함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겁니다. 그 기분은 느껴 본 사람만 알 수 있어요. 게다가 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주위의 모든 사물과 물건을 가지고 골드버그 장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죠."

학생들은 골드버그를 만드느라 고생도 많이 하고 실패도 많이 해서 어서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기도 했단다. 그러나 막상 끝내고 보니 허전하고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오랜 시간을 팀원들과 함께 보내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알게 되었는데, 골드버그 장치의 부품들처럼 단점만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우리는 모두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걸 느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장소 섭외가 제일 큰 문제였는데 좋은 장소를 선뜻 내어 주신 남부과학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열성적으로 수업지도를 해 주신 이창열 선생님께도 감사드러요. 뜻만 있다면 주위에 나를 도와주는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신다는 것을 느꼈답니다."

학생들은 앞으로도 각자 집에서 개인적으로 골드버그를 만들어 보고 그것에 대해 서로 공유할 예정이다. 가능하다면 학교에 사설동아리를 만들어 더 많은 친구들과 같이 만들어 보고 싶다. 자몽 프로젝트가 내년에도 계속 진행되고 지원이 된다면 골드버그 대회에도 참가해 보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글=이지원(서울 영신고 2) TONG청소년기자 신대방지부
사진·영상제공=골드버그 창작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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