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화계 블랙리스트 전면 수사, 다음은 최씨 일가 재산 형성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지난 23일 새벽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이 있는 서울 대치동 대치빌딩 주차장에서 한 수사관이 검은색 카니발 두 대에 실린 압수수색용 빈 상자를 점검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틀 전 국민연금공단과 보건복지부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포문을 열었던 특검팀의 새로운 타깃에 대한 강제수사 돌입이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윤곽 드러난 특검의 ‘새로운 길’

수사 개시 후 철야 기록 검토와 조사를 계속해 온 특검팀 내부 관계자들로부터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에 대한 전면적 수사에 돌입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첫 압수수색에서 특검의 ‘중요한 길’이 박근혜 대통령의 제3자 뇌물제공 혐의의 대가성 입증임을 분명히 했다면 이날에는 특검의 ‘새로운 길’의 윤곽이 드러난 것이다. 현판식(21일) 수일 전에 박 특검은 수뇌부들과의 회의에서 “걸어보지 않은 길을 하나쯤은 새로 뚫어야 특검의 명분이 생긴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반정부 성향의 문화계 인사 1만여 명의 목록이 정리된 문건을 작성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를 관리했다는 의혹은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선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서울연극협회 등 12개 문화예술단체가 지난 12일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특검에 고발한 대상은 김기춘(77)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50) 문체부 장관, 정관주(52) 문체부 1차관 등이다.

2014년 ‘김기춘 비서실장-조윤선 정무수석-정관주 국민소통비서관’ 라인에서 탄생한 블랙리스트가 문체부 예술정책과를 통해 문예진흥기금을 관리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전달돼 반정부 성향의 문화계 인사들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게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의 골자다. 특검팀은 최근 접수된 제보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자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될 단서를 포착했다.

특검팀은 최순실 일가의 부정축재 재산의 규모와 형성 경위를 밝힐 ‘축재 재산 전담팀’도 띄우기로 했다. 이를 위해 특검팀은 최씨의 해외은닉 재산을 추적할 전문 변호사 한 명과 역외 탈세 여부를 확인할 국세청 간부 출신 전문가 한 명을 추가로 합류시켰다. 최순실 일가의 불법 재산 형성 및 은닉 의혹은 특검법상 수사 대상 12호에 올라 있다. 박 특검은 임명된 직후 “최순실 일가의 불법 재산 형성 과정을 파헤치는 데 있어 필요하다면 최태민(1994년 사망)씨 생전의 일들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 재산 형성 및 은닉 의혹은 박 특검이 선택한 두 번째 새로운 길이 될 것이라는 게 특검 안팎의 전망이다.

특검팀의 주력 부대인 윤석열 부장검사팀은 21일 압수수색 이후 4일째 복지부와 연금공단 간부들을 줄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지난해 7월 연금공단 내·외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찬성 입장을 주도했던 홍완선(60) 전 기금운용본부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사법처리하면서 이 과정이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음을 밝혀보겠다는 게 특검팀의 포석이다. 특검팀은 압수수색과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연금공단의 의사결정 과정에 복지부 등 윗선의 개입을 입증할 진술과 물증을 일부 확보했다.

24일까지 특검팀은 주어진 수사기간 70일 중 4일을 썼다. 그 전 준비기간 20일은 2만여 쪽의 검찰 수사기록과 자료를 검토하는 데 썼다. 한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제3자 뇌물죄 혐의를 밝혀내는 데 있어서도 모든 기업과의 관계를 다 볼 생각하지 말고 가장 중요한 기업만 보고, 새로운 길 중에서도 나중에 ‘이 산이 아니었다’는 말이 안 나올 혐의들을 잘 골라내는 게 짧은 시간 동안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