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주장 「일리」도 인정하라|독선이 판치면 민주주의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미국정부 관리들과 사석에서 얘기를 해보면 민주주의에 관한 한국인의 능력을 경멸하는 것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 대학의 한국 정치사 교수인 「브루스· 커밍즌」 씨가 최근 한 일본잡지에 기고한 글의 내용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논거는 대개 한국은 유교적 전통에 따라 권위주의 의식이 뿌리깊다, 따라서 그 같은 정신적 토양에서 어찌 쉽사리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기를 기대하겠느냐는 것으로 요약되고 있다.
1952년 피난수도 부산에서 정치파동을 겪을 때 들었던,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던 외지의 비아냥과 같은 맥락이다. 6·25때는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껏 그런 소리를 듣고 있으니 창피스러울 뿐이다.
스스로 돌이켜봐도 사고방식이나 형태 면에서 우리의 민주훈련이 매우 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 이런 혹평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어렵다.
신문사에 있다 보면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수많은 항의·칭찬·부탁 전화를 받게된다. 개중에는 흐뭇한 전화도 있지만 대개는 기분을 상하게 되는게 보통이다.
6월10일 이후에도 물론 숱하게 전화가 쏟아졌다. 관변에서 오는 전화의 대종은 데모기사와 사진이 너무 선동적인데 무슨 저의냐는 것이다. 반면독자 전화는 데모상황·명동상황·연행학생의 소재 등을 묻는 문의와 함께 민정당 전당대희가 그렇게 크게 보도 될 가치가 있느냐는 항의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관이건 민이건 신문 보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영향을 미쳐보고자 하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환영할 일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의견을 제시하는 자세와 태도에 있다. 이쪽 얘기는 들으려고도 않고 자기하고 싶은 항의, 심지어는 욕설만 일방적으로 퍼붓다 끊어버리는 이른바 독자 전화가 적지 않다. 또 관변에서 대단한 불만을 표시해오는 것 중엔 실은 사실 오인이나 오해에 기인한 것이 적지 않다. 신문 보도에도 실수가 있게 마련이라 도움 될 만한 지적이 많으련만 대개는 강압적 태도에 기분이 상해 수용할 것도 수용하지 못하는 수가 흔하다.
이것은 우리의 민주주의·대화 훈련부족을 드러내는 사소한 한 예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을 수단으로 상대주의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이념인데 우리에게는 기본적으로 그런 인식 자체가 너무 부족한 듯 하다. 상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민주주의에선 정치목표나 주장의 절대화는 금물이다. 우리 입장은 절대로 옳고, 상대방 입장은 절대로 그르다는 독단이 횡행하는 곳에 민주주의는 성립할 수 없다. 내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남의 주장의 일리를 인정하고, 심지어는 내 주장이 그를 수도 있음을 인용하는 토양에서라야 민주정치는 꽃피는 것이다.
지난 1년여의 개헌논의 과정에서 우리는 이런 민주주의 원리와는 상극인 자기 주장의 절대화에 시달렸다. 집권 측은 의원 내각제를, 야당 측은 대통령 직선제를 그들이 내세운 민주화의 유일무이 한 길로 절대화시켰다. 실은 계속 집권, 정권 획득이란 각각의 목표를 위한 방법에 불과한 것을 절대적 가치로 고집하다 개헌 그 자체가 실종되는 사태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여야가 조금만 자기 주장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으로 대화와 타협의 노력을 기울였던들 정국이 이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개헌정국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정치판은 자기 주장의 절대화란 미망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권 측은 새로이 개헌유보를 선언한 4·13조치를 절대화하고 있고, 야당 측은 여전히 개헌논의를 난파시킨 직선 대통령제에 매달려 있다. 지난 2개월 간 여권의 반응을 보면 4·13조치가 성급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일단 결단이 내러진 이상 밀고갈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집권 측은 이 조치가 지금의 위기 정국을 몰아온 태풍의 눈이라는 사실에 눈감으려 해선 안 된다. 당초 집권 측은 6·10 규탄대회의 양상을 11·29, 2·7, 3·3대회 정도로 예측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6·10사태의 양상은 그 이전의 어떤 야권대회와도 그 규모나 성격이나 호응도 에서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4·13조치 때문이다. 이점을 집권 측은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또 결국 개헌유보조치까지 낳았던 대통령 직선제에 여전히 매달러 있는 야당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이 상황에서 직선제를 밀고 나가려면 장외투쟁 외에는 길이 없다. 6·10사태에서 보듯이 제대로 어거 하지도 못할 장외투쟁을 선도했다 빚어지는 통제불능 사태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 나라를 또다시 후퇴가 아닌 진정한 민주화의 방향으로 진전시키는 길은 자기 주장에 집착하지 않는 상대주의 정신과 대화·타협이란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하는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여야 모두 절대화했던 당론과 입장을 상대적 목표로 낮춰야 한다. 집권 측은 4·13조치를, 야당 측은 대통령 직선제 당론을 수정할 수 있다는 전제로 마지막 개헌협상을 벌임으로써 정국의 주도권을 거리로부터 정치마당으로 회수해야 한다.
우리의 의식수준이 상대방의 일리에 눈감고 자기 입장 관철에만 매달리는 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장래에는 희망이 없다.
우리의 민주 능력에 대한 외국인의 회의적인 눈초리에 언제까지 주눅이 들어야 하겠는가.이제는 더 늦출 것도 없는 상황이 아닌가. 지금은 정치인을 비롯해 모두 독선에서 벗어나 민주적 사고로의 일대전환을 기해야할 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