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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자의 행방-30초안에 알려 준다더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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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10 사태」의 고통과 아픔은 국민 모두가 겪는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대학생을 둔 부모들의 불안한 심정은 공감이 간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도 별의 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더구나 전투경찰의 최루탄 남발로 빚어진 사태들은 심상치 않다.
이번 사태 중에 연행된 사람은 4천명에 육박하고 서울에서 만도 2천명이 훨씬 넘었다. 얼마나 많은 부모와 가족들이 소식이 끊어진 자녀들의 행방을 알려고 애를 태웠을 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경찰이 친절하게도 연행 학생들의 가정에 통보해 주리라는 기대는 당초부터 갖질 않았지만 행방 문의센터에서 문의전화만이라도 안내해 주었던들 이런 혼란과 부모들의 걱정을 조금은 덜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여전히 응답이 없었고, 연고자들은 경찰서마다 헤매고 다녀야 했다.
경찰에 연행된 후 시체가 된 박종철군 사건 후 경찰은 인권보호를 위한다며 연행자는 즉각 가족에게 연락해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또 행방문의 센터에 전화만 걸면 3O초안에 행방을 알려주겠다는 엊그제의 홍보가 기억에도 생생한데 30초는 커녕 30시간이 넘어도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물론 경찰의 딱한 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한꺼번에 수천명을 검거하다보니 부족한 일손에 조서를 꾸미고 경중을 따지는데 고충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애당초 못지킬 약속이라면 아예 발표를 하지 말거나 최소한 경찰서로 찾아간 가족에게라도 최선을 다하는 성의라도 보였어야 하지 않는가.
그마저 불가능한 일이었다면 연행된 학생에게 집으로 전화통화만이라도 허용했던들 가족들이 경찰서마다 돌아다니며 애태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전화가 모자라 그것도 불가능했다면 경찰서마다에 연행자 명단을 복사해 게시하는 자그마한 성의마저 보일 수 없었을까. 경찰이나,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비록 입장이 다르더라도 어쩔수없이 겪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더는데 최선을 다해야하리라고 믿는다.
국민이 경찰을 신뢰하는 상황이라면 부모들이 그토록 초조하고 조바심을 태우며 불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행방조차 모르는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혹시 무슨 변고라도 하는 온갖 불길한 예감과 상념이 교차하게 마련이다.
구태여 형사소송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데는 법이 정한 절차를 엄격히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절차 중에는 「통지」 의 의무도 빠뜨릴 수 없다. 준법을 위해 시위학생을 체포하고 구금하면서 절차에 준법이 안되거나 국민에게 한 약속을 외면해 버린다면 그보다 더한 넌센스가 없을 것이다.
학교 캠퍼스에서 한창 공부를 해도 부족한 학생들이 길거리에 나와 시위를 하기에 이르른 오늘의 시국은 모두의 슬픔이고 아픔이다. 모두가 겪는 진통이 무엇에 기인하는지는 구차하게 따지고 싶지도 않다.
이제 더 이상 거창하고 화려한 헛 구호는 되풀이 말고 사소한 것부터라도 실행에 옮겨 경찰에 거는 실낱같은 기대와 신뢰만이라도 회복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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