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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성형 시술 분쟁 느는데, 의료법 보호 못 받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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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30대 여성 A씨는 2014년 7월 한 의원에서 다리 털 제거 시술을 받았다. 털의 멜라닌 색소에 레이저를 쏘아 다시 털이 나지 않게 하는 시술이다. 하지만 레이저가 너무 강해 물집이 생겼다. 치료를 받아 상처는 나았지만 색소 과다로 인해 지워지지 않는 반점(색소침착)이 생겼다. A씨는 해당 의원을 상대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의료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했다. 의료중재원은 “병원이 시술 부작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고 안내문에도 담지 않았다”며 병원 측에 620만원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부작용 설명 안 한 의사 처벌 규정
국회서 수술·수혈·전신마취로 제한
쌍꺼풀·레이저·필러·제모 등은 빠져
의료사고 나도 구제받기 힘들어
“적용 대상 늘려 환자 권리 보장해야”

또 다른 30대 여성 B씨는 한 의원에서 이마·미간·눈 주변에 보톡스 주사를 맞았다. 그런데 시술 뒤 염증이 생기자 의료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했다. 조사 결과 병원이 안내서에 염증 등 예상 부작용을 매우 간략하게만 적어놓는 등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670만원을 배상받았다.

최근 피부·모발 관리나 성형시술 환자가 늘면서 부작용을 둘러싼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의료중재원이 최근 공개한 2012~2015년 피부·성형외과 분쟁 실태에 따르면 4년간 분쟁 상담 건수가 피부과 1139건, 성형외과 2670건이었고 조정을 신청한 의료사고는 각각 123건, 248건이다. 이 중 배상 결정이 난 사고의 주요 원인은 의사의 설명 부족이었다.

이 같은 설명 부실에 따른 의료 분쟁을 막기 위해 이달 초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은 의사를 처벌(과태료 300만원 이하)토록 의료법이 개정돼 내년 6월 말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 법률에 따르면 의사는 수술 전 ▶증상과 진단명 ▶행위의 필요성·방법·내용 ▶설명한 의사 이름과 행위를 하는 주요 의사 이름 ▶예상 후유증·부작용 등을 설명해야만 한다. 하지만 수술·수혈·전신마취 등 세 가지 행위만 해당될 뿐 대부분의 피부·성형 시술은 제외될 예정이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복지부는 코성형·양악수술·지방흡입·가슴성형 등 일부 성형 시술만 적용 대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프로포폴 같은 마취제로 마취하는 시술은 해당하고, 그렇지 않으면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부작용에 따른 분쟁이 많이 발생하는 쌍꺼풀·레이저·필러·보톡스·제모·모발이식·태반주사·상안검거상술 등 대부분의 피부·성형 시술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환자들의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많아진다는 의미다.

의료법 적용 대상이냐 아니냐는 차이가 크다. 적용 대상일 경우 환자가 “설명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민원을 제기하면 보건소가 현장 조사를 나가 진료기록을 확보해 잘잘못을 가린다. 병원 측의 과실이 드러나면 과태료도 부과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법 적용 대상이면 보건소가 조사하기 때문에 환자가 일일이 진료기록을 조사하거나 병원과 다툴 필요가 없다”며 “병원이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되면 명확한 증거가 돼 환자가 민사소송이나 의료중재원 조정에서 훨씬 유리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피부·성형시술이 법 적용 대상에서 빠진 것은 지난달 중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적용 대상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수술·수혈·전신마취 외에도 다른 의료행위를 포함하거나 의료법 시행령에서 추가할 방침이었다. 이 때문에 복지부에서도 “법률이 미흡하게 개정됐다”는 말이 나온다. 법률사무소 해울의 신현호 대표 변호사는 “환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려면 벌칙 규정을 행정제재인 과태료에서 형사처벌인 벌금으로 바꿔 강도를 높이고 적용 대상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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