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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진짜 얼굴 밝혀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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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명성황후 사진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이번엔 풀릴까. 1895년 10월 8일 경복궁에서 피살된 비운의 명성황후. 장례식도 바로 열리지 못하고 2년 후인 1897년 11월 21~22일에야 열렸다. 그 장례식 소식을 전하는 118년 전 신문이 발굴됐다. 1898년 1월 9일자 미국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이다. 장문의 기사와 함께 명성황후의 삽화가 실려 있다.

명성황후 장례식을 보도한 1898년 1월 9일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사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명성황후 장례식을 보도한 1898년 1월 9일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사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기사를 쓴 이는 바로 안중근 의사가 “한국인이라면 하루도 잊을 수 없는 인물”이라며 존경을 표했던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1863∼1949) 박사다. 우리나라 첫 근대식 관립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1886년에 초빙돼 온 인물이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추진한 조선의 근대화 개혁을 지지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다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당했다.

장례식 전한 118년 전 미 신문 발굴
고종과 친했던 헐버트 박사가 필자
황후 삽화, 궁녀 논란 인물과 닮아

이번 기사를 발굴한 이는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이다. 김 회장은 19일 오전 10시 30분 서울YMCA 대강당에서 ‘헐버트 박사 내한 13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열고 이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명성황후 진짜 얼굴을 알아내려 했지만 오리무중이었다. 이번 삽화는 그중 1893년 프랑스 월간지 ‘피가로 일뤼스트레’(10월호)에 실린 사진과 유사하다. 여행작가이자 기자인 프랑스인 게르빌이 찍은 것으로 “민, 조선의 황후(Min, Reine de Coree)”라는 설명이 달려있다. 그러나 이 사진은 명성황후로 공인받지는 못했다. 조선을 소개하는 당시의 다른 책자들에도 이와 같은 사진이 나오는데 대개 궁녀로 소개되고 있어서다.

그런데 이번 발굴로 상황이 좀 달라졌다. 이 삽화에도 “시해된 한국의 황후(The Corean Empress Who Was Murdered)”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 특히 헐버트가 고종황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한국말도 잘했기에 명성황후의 얼굴을 분명히 알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헐버트는 궁궐에서부터 동대문 밖 홍릉에 이르는 성대한 장례 행렬을 스케치했다. 헐버트가 이번 삽화를 제공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초상의 진실을 찾는 실마리는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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