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권력남용·친목질·무능력…카페 운영 농단하는 ‘영자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관리자, 운영자로 부르는 권력자(?)가 있다. 요즘엔 포털 서비스의 카페가 흔해서 카페지기, 카페매니저라는 이름이 더 잘 알려져 있다. 기술관리자 이미지가 강했던 예전에는 시솝(sysop)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시스템 운영자(System Operator)의 줄임말이다. 옛날 하이텔에서는 피시껌(pccom), 나우누리에서는 나우지기라는 애칭의 시솝이 있었다.

운영자의 대부분은 커뮤니티를 만든 사람이 맡는다. 본인이 직접 만들고 관리하며 절대권한을 행사하는 점에서 거의 창조주급이다. 게시판에 글을 쓰다가 글 성격이 맞지 않으면 운영자에 의해 삭제를 당하거나 심한 경우 사용중지를 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사이버 치안 권력을 빗대 한때 ‘(운)영자의 전성시대’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줄여서 ‘영자님’으로 불리는 운영자는 사이버 공간의 절대권력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사이트의 구성, 이용자 관리, 게시글에 대한 판단까지 온라인 행정·입법·사법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권력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네이버 중고나라 카페는 무려 1500만 명이 가입돼 있다. 우리나라 최대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 인구보다 더 많다. 이 카페 운영자의 권력화를 보여준 유명한 일화가 ‘로마법 사건’인데 사연은 이렇다. 한 이용자가 마작용품을 팔려다가 사용중지 됐다. 마작용품 거래 자체가 사행성을 조장하는지는 이견의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다른 회원들이 운영자에게 마작패 거래가 사행성을 조장하는 행위인지 물었다. 그런데 운영자 중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규정이 싫으면 탈퇴하거나 다른 카페로 가라’며 ‘로마에 오면 로마법에 따르라’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질문하거나 항의하는 회원 다수를 영구 탈퇴시켜 버린 것이다. 운영자의 횡포에 회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일부 회원은 동반 탈퇴하기도 했다. 결국 대표 운영자가 나서 사과했지만 운영자 권력 남용의 대표적 사건으로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운영진의 권력 남용과 함께 또 다른 문제로 ‘친목질’이 있다. 친한 사람들끼리 사이버공간을 사유화하는 것을 말한다. 커뮤니티는 원래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운영자가 자신과 친한 사람들로만 운영진을 구성하고 커뮤니티를 폐쇄적으로 운영하면서 전횡을 일삼는 것은 문제다. 이른바 ‘카페 운영 농단’이 이뤄지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일반 회원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신규 가입자가 줄고 기존 회원도 탈퇴해 심한 경우 커뮤니티가 소멸되기도 한다.

운영진의 무능력은 더 큰 문제다. 사이버 공간에는 뻘글(관심을 끌기 위해 쓰는 생뚱맞은 글)을 방치할 경우 싸움이 일어나 커뮤니티가 깨지는 경우가 있다. 남초 사이트에서는 여왕벌 현상(여성임을 지나치게 어필하는 여성 회원과 이에 끌려다니는 남성 회원)이 생겨 회원들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는 등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상업적 물품 홍보나 불법 용품을 거래하는데도 모른 척 놔둘 경우는 불법의 온상이 된다. 운영진이 무능력을 넘어 아예 불법 거래를 유도하는 경우는 더 심각한 상황이 된다.

이와 같은 사이버 공간의 ‘인터넷 독재’는 인터넷 역사 20여 년 동안 다양하게 일어났다. 인터넷 문화를 기록하는 ‘나무위키’ 사이트에는 이런 운영자의 독재와 회원들의 싸움에 관한 다양한 사례가 열거돼 있다. 온라인 권력에 맞선 다툼이 현실 속 법정 싸움으로 이어진 경우도 많다. 최근 법원은 회칙과 절차에 따른 인터넷 모임을 회원 공동의 것으로 인정해 주는 추세다. 본인의 동의 없는 게시물의 삭제에 대해서는 관리자의 배상 책임을 요구한 판례도 있다.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나 권력이 생기고 정치가 있다. 사이버 세상이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무능력한 운영자,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농단하는 운영자, 전횡과 독단으로 커뮤니티를 지배하려는 운영자는 오래 못 가고 쫓겨나기 마련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직접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훈련하는 소중한 실험실이 되고 있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