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2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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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제 1화>
여우 한마리가 먹이 사냥을 나왔다가 우연히 길에서 나귀를 만났다. 여우는 발빠른 나귀와 다니면 사냥하는데 도움이 될듯 싶어 나귀와 같이 다니자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 늙고 굶주린 사자를 만났다. 꾀많은 여우가 사자에게 다가가 귀에다 대고 나귀를붙들어 줄테니 자신의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했다. 사자가 고개를 끄 떡였다.
여우가 이번에는 나귀에게 와서 사자에게 잘 말했으니 어서 도망가자고 능청을 떨었다. 그리고는 숲속 길로 나귀를 인도해 사냥꾼이 파놓은 함정에 빠뜨렸다.
여우는 의기양양해서 사자에게 말했다. 『사자님,천천히 많이 드세요. 저는 갑니다.』
그러나 사자는 함정에 빠진 나귀는 도망가지 못할 것을 알고 여우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당황한 여우는『아니, 약속이 틀리지 않습니까』하고 항의했다. 그러자 사자는『이놈아, 너도 나귀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거짓말장이가 아니냐』하고 여우를 잡아 먹었다.

<제 2화>
이리가 길에서 새끼사슴을 만났다. 어린 사슴은 너무 놀라서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마침 이리는 심심하던 차라 새끼사슴에게 바른말 세가지만 하면 살려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정신을 가다듬은 새끼사슴이 죽음을 각오하고 입을 열었다. 『저는 길에서 무서운 이리를 만나지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읍니다.』『그래, 그 다음은?』 『만일 만나더라도 장님이리이기를 바랐읍니다』『오냐, 그럼 마지막은?』『하느님께서 벌을 내려 이 세상에서 이리가 모두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읍니다.』
이리는 자기앞에서 정직하게 말하는 새끼사슴이 하도 기특해 그대로 살려 보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우화는 권선징악을 내세운다. 그래서 잔혹하고 간교한 이리나 여우는 항상 징벌을 받고, 착하고 순한 사슴과 양은 언제나 마지막에 웃음을 찾는다. 그러나 현실은 우화가 아니다.
박종철군의 고문치사 사건은 이제 박군의 죽음 못지않게 그 사건을 맡았던 수사당국의 범인축소은폐공작에 더욱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분노에 떨게 했다.
그러나 이런 분노와 좌절의 수렁속에서 한가닥 희망을 안겨준 것이 있다. 『구속될 것을 각오하고』진실을 밝힌 가톨릭사제단과 그것을 제보한 몇몇 사람의 용기있는 행동이다.
따라서 박군의 죽음은 허위와 불신과 부도덕이 만연한 이 사회에서「탁, 억」으로 상징되는 여우의 거짓에「죽음을 각오한」새끼사슴의진실이 정말 승리할수 있느냐는 명제를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물론 진실이 이길 것이다. 꼭 이겨야 한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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