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 8년 파티 끝…신긴축시대 막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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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1년 만에 기준금리를 올리며 신(新)긴축시대의 막을 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8년간 이어지던 초저금리 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셈이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라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구사하던 중앙은행이 전통적 통화정책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얘기다.

미, 1년 만에 금리인상 단행
내년 세 차례 추가 인상 예고
유럽·중국·일본도 돈줄 죌 듯
한은 곤혹, 일단 금리 동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14일(현지시간) 시장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끌어올려 0.5~0.75%로 정했다.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의 표시”라고 말했다.

특히 FOMC는 향후 금리 예상치를 종전보다 높여 잡았다. 내년 말 기준금리가 1.4%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0.25%포인트씩 세 차례 올릴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기존의 금리 인상 횟수와 예상치(두 차례 인상과 1.1%)를 뛰어넘는다.

FOMC가 앞으로 금리 인상 흐름이 빨라질 수 있다고 본 것은 두 가지 상황 때문이다.

우선 트럼프노믹스다. 트럼프가 공약한 1조 달러 인프라 투자는 물가 인상을 촉발시켜 금리 인상을 이끌어낸다. 옐런 의장은 이날 트럼프의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에 대해 “많은 불확실성이 있다”며 “기다려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당선 한 달 동안 트럼프의 행동을 보면 인프라 투자는 한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또 한 가지는 저금리파의 대모였던 옐런의 입장 수정이다. 그동안 옐런은 저금리를 가급적 오래 유지하겠다는 쪽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경제과열을 권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는 금리를 경제 형편에 맞게 올려나가겠다는 의미다.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4.6%. Fed가 이번에 책정한 완전고용 수준(4.8%)보다도 낮다. 게다가 국제유가가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물가도 오름세를 타고 있다. 옐런이 금리 인상을 지연시킬 명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실업률 4.6%, 물가 오름세…옐런 “미 경제 자신감 표시”

미국발 신긴축은 글로벌 경제 곳곳으로 파급될 전망이다. 유럽도, 일본도 이제 무제한 통화방출 정책에서 손을 뗄 준비를 하고 있다. 신흥시장도 위태로워졌다. 외국자본들이 금리 인상을 좇아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통화가치가 급락해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 신흥국들은 고육지책으로 금리인상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멕시코는 공격적인 금리인상에 나서고 있고, 중국도 금리를 올릴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금리를 내리자니 자본 유출이 걱정되고, 올리자니 1300조원 가계부채가 골칫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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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기준금리를 1.25%로 동결한 뒤 “대외건전성이 양호하기 때문에 급격한 자본유출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1년 전 이맘때도 정부와 한은은 “미국 금리인상의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위기의식의 부족은 1년 전이나 판박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조금이라도 시간이 있을 때 구조개혁 같은 근본적인 해법을 도모하자”고 촉구했다. 그러나 소모적인 정쟁과 최순실 스캔들 속에 개혁의 골든 타임은 물 건너갔다. 한국 경제는 비상한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공일 이사장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주요 분야별 구조조정과 개혁을 평상시보다 더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전 세계가 다른 신흥국과 함께 한국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있다”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경제는 평상시처럼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business as usual)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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