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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제질서 지각 변동 예고하는 틸러슨 미 국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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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사령탑으로 내정된 것은 파격 중의 파격이다. 세계를 주름잡는 미 국무장관 자리에 외교는 물론 어떤 공직 경험조차 없는 석유업계의 큰손이 앉게 돼 국제질서가 새 논리에 좌우될 공산이 커졌다.

23세 때 엑손모빌에 입사한 틸러슨은 41년간 줄곧 이 회사에서 일하며 해외 에너지 개발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이 과정에서 각국 실력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특히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인 이고르 세친 로스네프트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사장과 친밀한 인물이다.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 차기 대통령의 공공연한 반중(反中) 정책과 틸러슨의 친러 성향이 결합하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지 모른다. 미국과 러시아가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는 1970년대 미국이 옛 소련을 압박하기 위해 중국과 협력했던 것과 정반대의 구도다.

이런 예상이 맞다면 미·중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하고 중간에 낀 한국은 어느 편에 설지 선택을 강요받게 될지 모른다. 동아시아 내에서는 진영논리가 강화됨으로써 남북 관계는 가파르게 경색될 가능성이 크다. 틸러슨 취임 후 세계질서의 큰 그림이 어떻게 그려지고, 그 설계도의 한 부분인 한반도 안보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에 따라 우리의 생존이 달렸다. 외교당국이 발 빠르게 틸러슨 시대를 분석하고 대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행히 틸러슨은 사업가치곤 외교 문제에 해박하다. 그는 권위 있는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이사로 활동해 왔다. 또 외국에서 생활한 경험도 풍부해 세련된 외교정책을 펼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다 틸러슨이 트럼프와 달리 자유무역주의를 소중히 여긴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그가 이 같은 입장을 밝힌 적도 여러 차례다. 틸러슨이 협상에 능한 사업가 출신임을 십분 활용해 우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부터 불리하게 개정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