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상대로한 정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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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앞으로 정국은 어찌될 것인가. 극한 대결로만 치닫는 여야의 정쟁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경은 한결같이 어둡고 무겁다. 정말 이러다가 무슨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통일정강을 둘러싼 논쟁으로 여야의 대치는 절정에 달한 느낌마저 준다. 정부·여당은 자진 수정을 하지 않을때는 2단계 대응을 한다는 강경자세지만 야당은 이를 묵살하고 개헌논의 재개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바야흐로 시·도지부, 지구당 개편대회등을 통해 대결은 장외로 확산될 조짐이다.
이럴때 누가 나서서 중재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우리에겐 그 일을 맡을만한 정당도, 인물도 없다.
국회의장마저도 『지금은 대화를 주선할때가 아니다』고 아예 두손을 들어 버렸다. 그렇다고 신민당이나 국민당이 「완충역」을 자임하고 나설수도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워낙 여야관계는 권력배분이 일상화된 나라에서는 순탄하게 전개된다. 정권교체가 가능성이 보일 때 야당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정책정당으로 국민의 지지기반을 쌓으러 든다. 그러나 집권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아예 들러리 정당으로 자족하거나 강경, 투쟁적인 성격을 띠게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현재의 여야관계는 적어도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멀리 동떨어졌다 해서 과언은 아니다.
정치가 잘못되면 경제, 사회, 문화등 모든 분야에 영향이 미치게 마련이다. 반면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은 그만큼 각계의 의견과 이해가 다양해짐을 뜻한다. 정치도 그러한 사회적, 경제적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정치가 제발 제자리를 찾고 제 구실을 다해 주기를 간절히 호소해온 것이 아니던가.
기회있을때마다 지적한대로 강경이 강경을 부르고 강경의 악순환은 마침내 파탄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러한 일은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임은 물론이다.
사태가 이쯤에 이른데는 칼자루를 쥔 쪽의 책임이 더 크겠지만 야당에도 상당한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강, 정책에 「배수의 진」을 침으로써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힌 우를 범한 면도 없지 않다. 특히 통일과 같은 민감한 문제는 좀더 신중했더라면 여당쪽에 빌미를 잡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선의 전략은 명분과 현실의 조화속에서 찾아져야 한다. 더우기 민주화가 국민 여망이며 국민적 합의라고 본다면 이 궁극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도 보다 능소능대한 유연성있는 전략 전술이 바람직하다.
여당 또한 야당만을 상대로하는 정치패턴에서 하루 속히 탈피해야 한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지금 각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서명, 단식, 농성, 시위등이 아무리 못마땅해도 이를 폭넓게 수용하는 것은 집권당이 당연히 해야할 일일 것이다.
정치가 상궤와 정도를 벗어나면 미래를 점칠 수 없기 때문에 국민들은 불안해진다. 그런 불안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부채질한다면 정치인이 할 일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미 상원외교위가 때마침 한국여야의 타협과 4·13조치의 재고를 요망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고 한다. 현재의 난국을 풀수 있는 길은 아무리 생각해도 오직 하나 뿐이다.
너무 자주써서 진부해졌지만 그것은 대화와 타협뿐임을 거듭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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