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비 넘긴 현대상선, 2M과 ‘낮은 수준 동맹’ 합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현대상선이 세계 최대 해운동맹 2M(머스크·MSC)에 조건부로 가입한다. 내년부터 제한적으로 선박 운항에 협력하되 3년 뒤(2020년)에 현대상선의 재무구조와 유동성이 개선되면 정식 가입할 수 있는 조건이다. 산업은행(현대상선 대주주)과 현대상선은 2M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M+현대상선 전략적 협력 제휴’에 합의했다고 11일 밝혔다. 양측은 조만간 제휴 협약서를 마련해 미국 해사위원회(FMC)와 세계 주요 항만청의 승인을 받은 뒤 내년 4월 운항 협력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번 합의서는 2M과 선복(화물 적재공간) 매입·교환을 통한 협력운항으로, 7월 양해각서(MOU) 체결 때 기대했던 공동운항(선복공유) 수준보다는 동맹 단계가 낮다. 세계 1~2위 해운사인 머스크와 MSC는 서로 선복공유를 하고 있다. 항로마다 필요한 선박을 서로 분담해 투입해 공동운항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두 회사는 적재공간을 공유하기 때문에 상대방 선박에 화물을 실을 때 적재 비용을 낼 필요가 없다. 반면 현대상선은 2M과 선박을 따로 운영하면서 화물을 적재할 선박이 부족할 때 이들에게 유상으로 빌려야 한다. 대신 머스크나 MSC 선박의 남는 화물 적재공간을 비회원사보다 싸게 빌릴 수 있고(선복매입), 두 회사의 적재공간을 빌려쓴 뒤 같은 규모의 현대상선 선박 적재공간을 빌려줄 수도 있다(선복교환). 산업은행 관계자는 “프랑스·중국 해운사로 구성된 ‘오션얼라이언스’도 현대상선과 2M처럼 선복 매입·교환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운행 아닌 선복 매입·교환
3년 뒤 상황 보고 정식가입 조건
현대상선 선복량 20% 늘어날 듯

이번 협상으로 내년부터 새 해운동맹 체제에서 현대상선의 선복량(화물 적재 규모)은 현재 해운동맹인 G6(내년 3월 종료)에 있을 때보다 2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중 현대상선이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북미 서안 운영항로가 기존 2개에서 3개로 늘어난 게 두드러진 수확이라는 게 산업은행의 설명이다.

해운동맹 계약 기간은 3년으로 정했다. 머스크·MSC 간 계약(10년), 오션얼라이언스 계약(5년)보다 짧다. 이는 산업은행과 현대상선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향후 해운업황이 회복될 경우 장기계약의 제한 조건이 현대상선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산업은행과 현대상선 측은 “미 FMC 승인을 받는 것이 해운동맹을 판정하는 주요 기준”이라며 “이번 계약은 구속력 있는 제휴 관계로 명백히 해운동맹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머스크·MSC가 선복량·재무상태·수익성 등 모든 면에서 현대상선보다 우위인 상황에서 실리에 방점을 두고 얻어낸 최선의 결과”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금융권과 해운업계에서는 동맹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애초 7월 MOU 체결 당시 거론됐던 공동운항 서비스보다 결속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이 현재 속해있는 G6는 선복공유를 하는 높은 단계의 동맹이다. 류동근 한국해양대 해운경영학부 교수는 “강한 동맹의 경우 공동운항이나 터미널 공동 운영, 내륙운송까지 협력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동맹은 협력의 강도가 낮다”고 말했다.

애초 공동운항에 긍정적이었던 2M의 태도가 지난 9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머스크는 여러 차례 “현대상선과 새로운 형태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고, 일부 외신은 이를 인용해 ‘현대상선의 2M 가입이 불발됐다’고 보도했다. 그때마다 채권단과 현대상선은 “협상 진행상황과 다른 오보”라고 반박했지만 이날 발표 결과를 보면 그간의 외신 보도를 완전히 틀리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유일 국적 선사인 현대상선 회생에 ‘올인’할 수 밖에 없는 한국 정부와 채권단의 상황을 2M이 협상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했다”고 말했다.

◆선복(船腹·slot)

선박의 화물(컨테이너) 적재 공간. 선복량은 컨테이너선의 적재 규모로 단위는 TEU다. 1TEU는 가로 20피트(약 6.1m) 길이 컨테이너 1개 크기를 뜻한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