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숨은 다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09호 31면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라는 ‘사건’은 ‘현재의 상황(status quo)’을 거부하는 세계적인 현상을 상징한다. ‘침묵하고 잊혀진 다수’가 목소리를 되찾고, 기존 정치엘리트를 대체하는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서는 현상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무시당하고 먹고살기 힘든 일반 미국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소통을 잘 했다. 반면 낙선한 힐러리 클린턴은 ‘현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현 상황’ 거부 현상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국민투표로 통과시킨 영국이나, 트럼프를 당선시킨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유럽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지난 4일 이탈리아 국민투표 부결로 마테오 렌치 총리가 물러난 사건도 이러한 현상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최순실 사건’을 계기로 부정부패에 불만을 품고 있던 조용한 다수가 ‘폭발’했다. 6번째 촛불집회에는 232만 명이나 참여했다. 촛불의 힘은 결국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숨어있는 조용한 다수가 현 상황을 뒤집는 현상은 중국이나 북한에도 있을 수 있다. 북한주민 100명을 면접조사해서 쓴 『사람과 사람』(강동완·박정란 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조선엔 간부들이나 잘살고 백성들은 못삽니다. 신발 하나 사신기도 힘듭니다. 고기 한 키로 (1kg) 에 3만원입니다. 탄 한 톤에 5만원인데, 탄 나온다해도 다 간부들만가져가서 백성들한테 주는 건 없습니다.”


간부들의 부정부패 확산은 북한주민들의 체제불만으로 이어지게 된다. “간부들이나 외화벌이 하는 사람들은 먹고 이렇게 남의 걸, 안전부 보위부들은 뭐 이렇게 저거하면 남의 걸 뺏들어 먹잖아요… 단속한 걸로, 근데 인민들은 그냥 순 제 피땀으로 그저 장마당에 제 노력으로 하니까. 차이가 심하게 들어가죠.”


위성TV 등으로 남한 미디어를 보는 북한주민은 “보도, 보도는 다 빠짐없이 봐요.남한에 대한 것도 많지만 북한에 대한 것도 많이 나오고 그러죠”라고 말한다. 뉴미디어는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과 마찬가지로 정보, 토론 및 담론의 자유로운 흐름을 허용하는 새로운 미디어는 전 세계의 침묵하는 다수를 연결하고 사람들 간의 관계를 재정립한다.


시위나 집회를 하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북한 주민을 위해 한국인들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침묵 속에 혼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을 위해 평화촛불시위는 계속되어야 한다.


마이클 람브라우미국 머시허스트 대학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